이름 |
파비안 울리세스 라모스 에스피놀라 (Fabián Ulises Ramos Espínola) |
생년월일 | 1919년 11월 4일 |
사망년월일 | 2002년 8월 13일 (향년 82세) |
국적 | 칠레 |
출신지 | 토코피야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불명 |
소속팀 |
아우닥스 이탈리아노 (1939)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40-1951) |
국가대표 | 6경기 1골 (1949) |
감독 |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69-1974)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78)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83-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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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라모스는 10살에 고향 토코피야를 떠나 산티아고에 정착했다.1939년부터 라모스는 아우닥스 이탈리아노에서 축구 선수 데뷔와 동시에 칠레 대학교에서 치의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1940년, 라모스는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로 팀을 옮겼고 그 해에 팀의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자신의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했다.
라모스는 1951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1.2. 국가대표
라모스는 1949년 브라질에서 열린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칠레 대표팀으로 참가했으며 이 대회는 그가 유일하게 참가한 대표팀 대회였다.그는 대회에서 6경기 1골을 기록했고 칠레는 8개팀 중 5위에 머물렀다.
2.2. 감독
라모스는 친정팀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서 감독을 맡았고 감독 첫 시즌이던 1969년에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달성했다. 라모스는 이로써 처음으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칠레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첫 인물이 되었다. 이 우승으로 우니베르시다드는 197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출전, 4강까지 진출했지만 CA 페냐롤에 막혀 결승까지는 가지 못했다.라모스는 1984년, 세번째 우니베르시다드 감독직을 맡다가 자신의 시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병원에서 녹내장 진단을 받았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나중에 오른쪽 눈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오른쪽 눈은 실명상태가 되었다.
3. 수상
3.1. 선수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40(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3.2. 감독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69(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1회: 1971(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