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31 17:39:59

울루그 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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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_of_Ulugh_Beg_revised.jpg
이름 Mirzo Ulugʻbek
الغ‌بیگ میرزا محمد طارق بن شاہرخ
생몰 기간 1392년 ~ 1449년

1. 개요2. 생애3. 업적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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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티무르 제국의 4대 군주.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정확하게 항성 거리를 측정하였을 정도로 천문, 수학에 엄청난 재능을 가졌지만 아들의 반란으로 허무하게 끔살당했다.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묻혀졌다가 19세기 와서야 서구 천문학자들이 뒤늦게 재평가하여 찬양하던 비운의 천문학자이자 군주.

참고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는 울루그 베그를 자국의 위인으로 기념하고 있기 때문인지 우즈베키스탄 남자들은 울루그 베그를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2. 생애

샤 루흐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울루그 베그'라는 명칭은 별명으로, 대략 '위대한 통치자'를 뜻하는데 이 칭호는 그의 할아버지 티무르가 가졌던 칭호들 중 하나였던 '아미리 카비르'(Amīr-e Kabīr)를 튀르크어로 옮긴 것이다.

그는 티무르 제국의 문화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사실, 통치 수완도 꽤 유능했다. 아버지 샤 루흐의 치세 때 사마르칸트를 분봉받아 40년간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다스렸으며, 동쪽의 모굴리스탄 칸국을 일시 점령하고 꼭두각시 칸을 세우기도 하였다. 통치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난 편. 하지만, 군사적 재능은 별로 없었고, 아들인 압딜 라티프가 군권을 휘어잡아 내전을 벌여 1448년 헤라트를 점령하는 등 제국 주요부인 호라산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위세가 높아진 압딜 라티프는 부왕의 정치가 이슬람교를 따르지 않고 지나치게 세속적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1449년에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처형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아들 압딜 라티프는 제위한지 고작 6달 만에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라는 명분으로 사촌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겨우 나이 서른에 아버지처럼 처형되고 만다. 이후 2년동안 여러 내전이 터지며 티무르 제국 서부는 이 혼란기를 틈탄 흑양 왕조와 흑양 왕조를 멸망시킨 백양 왕조에게 차례차례 뜯겨나갔다. 그나마 1451년에 즉위한 아부 사이드 미르자가 혼란을 제압하고 겨우 평온을 찾았으며 백양 왕조에 대한 보복 전쟁을 벌여 백양 왕조를 크게 물리쳤다.

3. 업적

문화인이며 동시에 수학, 천문학, 역사학에 능통했고 학자·예술가들을 우대하고 학문·예술을 보호 장려했기 때문에 당시 사마르칸트는 이슬람 학예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다.

울루그 베그 본인도 구면기하이나 삼각법을 비롯한 천문학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1424년부터 1429년까지 그는 사마르칸트에 거대한 천문대를 만들었다. 울루그 베그의 재능은 세계적이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세월이 흘러 그에 대하여 알게된 근대 시기 서구권 천문학자들이 경악할 정도였다. 지동설로 유명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정확하게 항성 거리를 측정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1526년 계산으로 365.2570370... 으로 D = 365 D 6 H 10 m 8 으로 30초 오차를 내고 계산했다. 기계나 컴퓨터도 없던 그 시대에 이 30초 오차는 대단한 것이다. 훗날 그의 계산보다 더 오차를 줄여 계산한 사람이 코페르니쿠스보다 90년전에 나왔다는 게 밝혀졌는데, 1437년에 울루그 베그가 오차를 25초로 줄인 계산으로 거리를 측정했다는 게 드러났다.

이렇게 온갖 천문학 및 수학 연구에 대해서도 엄청난 재능을 보였는데, 정치적으로 가려져 오랫동안 묻혀졌었다. 다행히 19세기에 그가 서구에도 알려져서 독일 천문학자 폰 마들러는 달에 난 화산 분출구를 발견하자 울루그 베그라고 이름을 지어 그를 기렸을 정도다.천재인데다 군주로서 재능도 있었지만 아들의 반란으로 허무하게 죽은 비운의 군주로 남게 되었다.

파일:울루그 베그 천문대.jpg

울루그 베그 천문대의 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터만 남았다.
파일:울루그베그박물관.jpg 파일:울루그베그천문대모형.jpg

울루그 베그 천문대 옆 박물관. 파괴되기 전 천문대 모형을 볼 수 있다

4. 기타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대전략 게임인 Europa Universalis 4에서 샤 루흐의 후계자로 등장한다. 어째선지 능력치가 3,3,2로 평균 이하로 설정되어 있으며 티무르의 영역의 50%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속국들이 샤 루흐가 죽으면 날뛰기 시작해서 고증대로 나라가 자주 망한다. 물론 플레이어가 잡으면 살아날 길은 있다.
  • 게임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우루그 베그 천문대 터가 3성 사적 발견물로 나온다.
학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자신도 천문학자였던 사마르칸드의 영주 울루그 베그에 의해 세워진 천문대.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선진적인 연구 시설이었다.
발견물 '울루그 베그 천문대 터'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