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0 10:33:52

우산국 여진족 해적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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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3. 이후4. 기타

1. 개요

우산국 여진족 해적의 공격에 의해 멸망하게 된 사건.

2. 전개

512년 신라-우산국 전투 이후, 우산국은 신라에 복속되어 있다가 후삼국시대가 되며 호족들이 난립하게 되자 930년대 신라에서 고려로 복속노선을 바꾸게 된다. 이후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1018년 여진족 해적의 공격을 몇 차례 받았고 약탈 때문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고 한다.

뜬끔없이 북쪽의 여진족이 나와 의아해 할 수 있으나 고려 초기에는 현재의 함경도 지역에 여진족이 거주했고, 지도를 보면 함경도에서 울릉도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침략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참고로 1010년대의 여진족 해적들은 쓰시마 섬, 일본 본토 일부까지 약탈할 정도였으니 중간에 끼인 우산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전투 당시 상황은 알 수 없으니 수많은 여진 해적들이 여러 척의 군함을 이끈채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우산국 병력이 무너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1350년 고려 말 왜구의 침입 같은 상황과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

3. 이후

전투 전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우산국 백성들은 1022년, 해적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해 배를 타고 한반도 인근 해안으로 도망쳐 왔고 이에 고려조정은, 고려로 도망쳐온 우산국 백성들을 현재의 영덕군 영해면 지역인 ‘예주’에 잠시 거주하게 했다. 우산국이라는 나라가 이 때 망했다는 명시적 기록은 없지만 고려중기에 관리가 섬을 찾아 확인했을 당시, 텅 빈 섬이 되었다고 기록한 걸 봐선 예주에 거주하게 되어 고려인과 융화되고, 우산국이라는 나라는 백성이 없어져 이 때 사실상 멸망했다 추정된다.

4.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