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12:45:56

우도 키어


<colbgcolor=blue><colcolor=white> 우도 키어
Udo Kier
출생 1944년 10월 14일 ([age(1944-10-14)]세)
독일 쾰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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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8cm
직업 배우
1. 개요2. 생애3. 그 외에4.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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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배우.

본명은 우도 키어스페(Udo Kierspe)이다. 60년대부터 유럽 및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개성 있는 연기파 배우로 활동해오고 있다. 데뷔 이래 50여년 동안 출연한 작품이 200편에 이를 정도로 다작했다.

날카로운 눈빛과 강렬한 인상이 돋보이는 배우로 각종 영화에서 강렬한 악역이나 조연을 자주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기력도 뛰어나서 섬뜩한 분위기의 악당부터 허당에 가까운 느낌의 개그 캐릭터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특히 호러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영화 팬이 아니더라도, 고전 RTS 게임을 즐겨했다면 레드얼럿 2 유리의 배우로 친숙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우도 키에르"라는 발음으로 알려져 있으나 본래의 발음은 "우도 키어"에 더 가깝다. 국내에서는 그의 이름을 표기하면서 "우도 키에르"와 "우도 키어"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다.

2. 생애

우도 키어는 1944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다사다난했는데, 그가 태어나자마자 병원이 폭격을 받아 어머니와 함께 잔해에 파묻혔다가 구출되기도 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유부남인데도 그 사실을 숨기고 우도 키어의 어머니와 정을 통해 놓고 달아났기 때문에 우도 키어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야 했다. 어린 시절에는 교회에서 복사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우도 키어의 어린 시절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끼니를 싸구려 야채 수프로만 때우느라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 지경이었고 한겨울에도 찬 물로 목욕해야 할 정도였다. 때문에 생계를 위해 어릴적부터 신문배달을 하기도 하고 빵 가게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1]

1962년, 18세가 된 우도 키어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이 때만 하더라도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고 당시 유명한 제약회사였던 바이엘에 취직하거나 혹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런던에서 우연히 영화사에 발탁되었고, 단편영화 《Road to Saint Tropez》을 시작으로 배우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주로 저예산 예술영화에 출연했다.

1975년, 《 르네의 사생활[2]이라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상업영화 분야에서도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를 저급한 포르노 영화라고 생각해서 출연제의를 거절했지만, 마침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로만 폴란스키가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프랑스에서 금서로 지정되었을 만큼 화제에 오른 작품이니 출연한다면 인지도 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출연을 권유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영화 덕분에 우도 키어는 생활이 풍족해지고 배우로서의 명성도 높아져서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팜스프링스로 이사한 후에는 주로 미국 영화계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에 오늘날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각종 할리우드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 에이스 벤추라》나 《 아마겟돈》, 《 블레이드》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에 호러 영화에 자주 출연했기 때문에 호러 영화 팬들에게는 친숙한 얼굴이기도 하다.

2021년, 《 백조의 노래》에서 미국 영화계 데뷔 이래 첫 주연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우도 키어가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론도 받았다. 이와 관련해서 자신의 청년기와 영화배우 경력을 회고하는 짧은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링크 인터뷰의 내용에 따르면 자신은 그동안 많은 재산을 모아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유하게 살고 있는 듯 하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우로서의 열정이 사그러들지 않은 모습도 보여주었다.

3. 그 외에

  • 젊은 시절에는 날카롭고 슬림한 이미지의 미남으로 유명했다. 애초에 취직을 위해 영어를 배우려고 런던으로 갔던 우도 키어가 예상치 못한 배우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눈에 띄는 외모 덕분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외모가 변했고, 호러영화 조연으로 유명해지다보니 그런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지만 특유의 크고 날카로운 눈매는 젊은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4]
  •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는 특히 돈독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딸인 아그네스의 대부가 되어주기도 했으며, 8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감독한 15편의 장편영화 중 10편[5]에 출연하는 등 거의 페르소나나 다름이 없을 지경이다.
  • 영화감독 다리오 아르젠토는 《 서스페리아》를 제작할 당시 우도 키어를 염두에 두고 본래 없던 배역을 만들 정도로 그를 캐스팅하려 애썼다. 우도 키어는 스케줄 때문에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려 했으나 아르젠토가 자신을 위해 따로 배역까지 만들었다는 말을 듣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후 《서스페리아》의 후속작격인 《 눈물의 마녀》에서도 조연으로 출연했다.
  • 커밍아웃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젊었을 적만 하더라도 독일에서 동성애를 하다가 적발되면 감방에 들어가야 했는데 지금은 젊은 동성애 커플들이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격세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에 주연을 맡은 영화 《백조의 노래》에서는 실제로 늙은 동성애자 역할을 맡았는데, 그가 죽은 연인의 무덤 앞에서 애도하는 장면에서는 연기보다도 자신의 실제 감정을 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4. 출연작


[1] 우도 키어는 인터뷰에서 이처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 때문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 생활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배우로 성공해서 돈을 벌게 되자 자신을 위해 고생했던 어머니를 위해 집을 사드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2] 원제는 《O의 이야기》 [3] 개인 소유의 목장이 있고, LA에도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 점을 보면 이런 그의 표현이 과장은 아닌 듯 하다. [4] 젊은 시절에는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던 조연급 배우들이 종종 있는데, 처키의 성우로 유명한 브래드 도리프도 그렇다. [5] 《에피데믹》, 《유로파》, 《킹덤》, 《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 《만덜레이》,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