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요한 호르바트 (Johann Horvath) |
생년월일 | 1903년 5월 20일 |
사망년월일 | 1968년 7월 30일 |
국적 | 오스트리아 |
출신지 | 불명 |
포지션 |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68cm |
등번호 | -[1] |
소속팀 |
1. 지머링 SC (1920-1927) SK 라피트 빈 (1927-1930) SC 바커 빈 (1930-1933) FC 빈 (1933-1935) 1. 지머링 SC (1935-1940) |
국가대표 | 46경기 29골 (1924-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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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선수.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호르바트는 1. 지머링 SC에서 데뷔하였다. 호르바트는 1924년 1월 13일, 뉘른베르크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강한 첫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로도 지머링 팀에서 주전 센터 포워드로 자리를 잡았고 많은 오스트리아 내의 강팀들이 그를 유혹했다. 하지만 호르바트는 시머링에 남아 팀의 역대 리그 최고 성적인 1926년의 3위까지 이끌어 냈다.하지만 호르바트는 결국 1927년 SK 라피트 빈으로 이적했고 이적 첫 해부터 리그와 미트로파 컵 준우승을 달성했다. 이듬해 미트로파 컵에서 호르바트는 8경기에서 6골을 넣으며 활약했지만 팀은 또 준우승에 머물렀다.
국제 대회에서는 다소 아쉬웠지만 국내 리그에서는 2차례의 우승을 맛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1930년, SC 바커 빈으로 이적했다.
바커 빈에서는 미트로파 컵에서 유의미한 커리어를 쌓지는 못했고 1933년부터 FC 빈에서 2시즌을 보냈다. 1935년부터는 친정팀 시머링에서 선수 생활의 말년을 보냈다.
2.1.2.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에서도 호르바트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1924년부터 1926년까지 매년 1차례씩 해트 트릭 경기를 만들어냈고 이런 그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1931년, 오스트리아는 축구 종가 스코틀랜드를 5대0으로 대파했지만 호르바트는 이 경기에 건강 문제로 출전하지 못했다. 이 경기 이후 오스트리아는 강력한 포스를 보이며 유럽 대륙을 호령했다. 호르바트 역시 월드컵 지역 예선 불가리아전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하며 분더팀의 명성에 한몫을 담당했다.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호르바트는 주장 완장을 차고 2경기에 출전, 2골을 기록했다.[3]
호르바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34년 10월의 중유럽 컵 헝가리전이었으며 이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는 1대3으로 패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패스와 기술에 강점을 보인 공격수. 마티아스 신델라, 토니 샬 등과 더불어 당시 분더팀의 공격을 이끌었다.4. 수상
4.1. 클럽
- 오스트리아 1부 리그 우승 2회: 1928-29, 1929-30( SK 라피트 빈)
- 오스트리아 1부 리그 준우승 1회: 1927-28(SK 라피트 빈)
- 미트로파 컵 준우승 2회: 1927, 1928(SK 라피트 빈
- ÖFB-컵 준우승 1회: 1928–29(SK 라피트 빈)
4.2. 국가대표
- 중유럽 컵 우승 1회: 19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