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1:39:11

오키나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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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a2d8b><colcolor=#fff> 시청 소재지 나카소네초 26-1
도도부현 오키나와현
면적 49.72km²
인구 142,048명[1]
인구밀도 2,857명/km²
시장
[[무소속(정치)|
무소속
]]
쿠와에 사치오
(桑江朝千夫, 3선)
시의회
(30석)
'''
약진
'''
8석
'''
호헌
'''
5석
'''
신풍
'''
5석

[[공명당|
공명
]]
4석
'''
일지
'''
3석

[[일본공산당|
공산
]]
3석

[[무소속(정치)|
무소속
]]
2석
중의원
(1/465석)

[[자유민주당(일본)|
자민
]]
1석
상징 <colbgcolor=#5a2d8b><colcolor=#fff> 시화 히비스커스
시목 야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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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역사4. 지리5. 스포츠6. 주일미군 기지7. 출신 유명인8. 이야깃거리

[clearfix]

1. 개요

오키나와현 중부에 위치한 오키나와현 제2의 도시로, 철도가 없는 시정촌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코자(コザ, Koza)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 상세

오키나와현에서 나하시에 이어 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오키나와 도시권을 구성하는 중심 도시이다. 동시에 인구 증가율이 연 1.2~1.3%에 달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인구 증가를 보이고 있다.

가데나 공군기지 등의 주일미군 기지가 많이 위치한 사정 등으로 미국색이 풍부하여 일본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가지고 있다. 또한 예능도 활발하여 많은 음악가를 낳은 도시이다. 도치기현 도치기시, 야마나시현 야마나시시와 마찬가지로 도도부현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도시이지만 현청 소재지는 아니다.

3. 역사

류큐 왕국 시절에는 고에쿠(越来)로 불렸다. 1666년에 고에쿠 마기리[2]에서 미사토(美里) 마기리가 분리된다. 류큐국이 일본 제국에 병합된 후 190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각각 고에쿠 촌, 미사토 촌이 되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중에 미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고에쿠 촌의 고야(胡屋)란 곳에 군시설을 설치하게 되는데, 이때 미사토 촌의 코쟈(古謝)란 지역과 헷갈리면서 이곳의 기지를 "캠프 코자(Camp Koza)"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유래한 코자(コザ)라는 지명이 고에쿠라는 이름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9월에 코자시(胡差市), 1946년 다시 고에쿠 촌이란 이름을 쓰다가 1956년 6월 가타카나를 쓴 코자촌(コザ村)이 되며 코자란 이름이 정착하였고, 같은 해 7월에 코자시(コザ市)로 승격되었다.[3]

미군 카데나 공군기지의 입구에 자리잡은 기지촌으로서 미군정 시대에 급속히 성장한 도시이다. 특히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수많은 A사인바[4], 라이브 하우스, 윤락업소 등이 성업하였다. 하지만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도 잦은 편이어 갈등도 컸다.[5] 1970년에는 미군 병사의 뺑소니가 발단이 되어[6] 코자 폭동이 발생, 미군 차량 수십 대에 불을 지르고 심지어 군 부지 내부의 미국인 학교에까지 방화를 저지르는 일이 벌어졌다.

1974년 코자시와 미사토 촌이 합병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시 이름을 응모하게 되었는데, 여러 후보 가운데 오키나와시(沖縄市)로 최종 결정되었다.

그러나 현재도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코자"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고 있는데, 단순히 "오키나와"라고 하면 오키나와현인지 오키나와섬인지 오키나와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탓인 것 같다. 당장 오키나와시 관광포털 사이트도 " 코자 웹(KOZA WEB)"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4. 지리

  • 오키나와 본섬 중부, 나하시의 북동쪽으로 약 20km 에 위치하여 태평양에 접해있다.
  • 도시의 상업 중심지는 국도 330호선을 따라 고야 사거리에서 코자 사거리까지이다. 특히 코야 사거리에서 가데나 공군기지 게이트까지 걸친 코자게이트 거리와 중앙 파크 애비뉴는 미군들이 많이 찾는 때문에 간판에 일본어와 영어를 병기하는 가게가 많다. 다만 최근 챠탄초 미하마 지구와 우루마시에 대형 상업 시설 건설이 잇따라 건설되면서 상업의 쇠퇴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도시의 남동쪽, 아와세 지구는 1987년 일본전국체전의 주 회장이 된 오키나와현 종합운동공원이 있다. 또한 남서부 오키나와 시영 운동 공원 및 코자 경기장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스프링 캠프지이다.
  • 도시 동부에서는 나카구스쿠만 매립에 의한 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와세의 갯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하여 반대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5. 스포츠

농구 구단으로는 B.리그 B1 서부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류큐 골든킹스가 있다. 오키나와 아레나를 홈구장으로 쓰고 있으며, 이곳에서 2023년에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이 공동개최하는 농구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렸다.

축구 구단으로는 J3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FC 류큐가 오키나와시의 타픽 켄소 히야곤 스타디움(오키나와종합운동공원 육상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JFL에 참가중인 오키나와 SV도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6. 주일미군 기지

미군 비행장이 카데나초와 함께 걸쳐 있으며, 동시에 육상자위대의 주둔지이기도 하다.

7. 출신 유명인

8. 이야깃거리

블러드 플러스, 놀러갈게!의 주 무대이다.


[1] 추계인구 2024년 2월 1일 기준 [2] 間切, 류큐국의 전통적인 행정구역 단위. 오키나와어로는 마지리라고 한다. [3] 2003년에 야마나시현 미나미알프스시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본에서 유일한 가타카나로 된 도시명이었다고 한다. [4] 미군으로부터 위생검사 등을 받은 다음 미군 병사에게 영업을 해도 좋다는 A사인을 받은 가게. 제도 자체는 현재 없어졌지만 오래된 가게들은 당시의 A사인을 액자에 걸어 자랑스럽게 전시하곤 한다. [5] 당시 미군 병사들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술이나 마약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6]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의 미군병사 뺑소니 사고에서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증거불충분 판결이 떨어진 일이 있어서 민심이 흉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