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9 15:34:01

오카다 코지

오카다 코지
岡田 耕始 | Kouji Okada
[1]
파일:빈 세로 이미지.sv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오카다 코지
([ruby(岡田, ruby=おかだ)] [ruby(耕始, ruby=こうじ)], Kouji Okada)
출생 1964년 2월 22일 ([age(1964-02-22)]세)
일본 도쿄도 다이토구 아사쿠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게임 개발자
학력 아오야마 제도 전문학교 (졸업)
소속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1983)
테크모 (1983~1986)
ATLUS (1986~2003)
주식회사 가이아 (2003~2010)

1. 개요2. 활동3. 참여작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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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게임 회사 ATLUS의 창립자 중 하나이자 회사의 대표 프랜차이즈 여신전생 시리즈를 발전시킨 게임 개발자.

진 여신전생의 창조주 중 한 명이자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였던 중역으로, 한때 올드 팬들에겐 신과 같은 존재로 불리기도 했다.

2. 활동

1983년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2]에 입사하며 게임 업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회사가 먼 타지로 이전하면서 통근이 불가능해져 채 반 년도 안되어 퇴사. 그 뒤 테크모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자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테크모에서 여러 게임 개발에 참여한 이후 1986년 4월 7일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회사 동료 5명과 함께 테크모를 퇴사하고 게임 회사 ATLUS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여러 회사의 하청으로 게임을 개발했으며 패미컴용 가라데 키드, 13일의 금요일같은 쿠소게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남코의 하청으로 소설 디지털 데빌 스토리 게임판을 제작하게 되며 여신전생 시리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ATLUS 입사 초창기에는 주로 게임의 프로그래머를 담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게임을 뜯어보면 "programming by cozy"라는 숨겨진 메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여신전생 시리즈의 이런저런 버그가 난무하는 상태를 보면 프로그래머로서의 코딩 역량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듯하다.[3]

프로그래머로서 한계를 느낀 오카다 코지는 프로그램 이외의 게임의 기획 등에 관심을 갖고 관여하기 시작해, 1992년 진 여신전생을 시작으로 디렉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진 여신전생 때는 프로그래밍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아 디렉터면서도 프로그래머를 겸임했지만 후속작 진 여신전생 2부터는 프로그래밍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디렉터를 전업으로 삼는다. 그러다가 게임의 플랫폼이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새턴 등 5세대 게임기로 넘어간 뒤에는 데빌 서머너 소울 해커즈를 마지막으로 현장 개발직에서 물러나 게임 프로듀서로 전업하게 된다.

프로듀서가 된 이후에는 포켓몬스터의 영향을 받아 아동층을 노린 데빌 칠드런 시리즈, 최초의 완전 3D 작품인 진 여신전생 NINE, 본가에서 탈피해 새로운 개성을 부여하려 한 페르소나 2 등 여러 참신한 외전을 기획하여 여신전생 프랜차이즈를 크게 확장시켰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무색하게도 그가 프로듀싱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두었을지언정 본가만큼의 평판과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해서 프로듀싱한 작품들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본가인 진 여신전생 3 녹턴이다.

1995년 진 여신전생 데빌 서머너 이후 여신전생 본가 스태프들이 뿔뿔이 흩어진 뒤에도 카네코 카즈마와 함께 ATLUS에 남았으며, 이후 대부분의 여신전생 게임들에 참여했다. 2003년 기존 시리즈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진 여신전생 3 녹턴을 마지막으로 ATLUS를 퇴사했다. 퇴사 이후에도 2004년에 출시된 DIGITAL DEVIL SAGA 아바탈 튜너까지는 ATLUS 게임에 약간이나마 관여를 했으나 그 이후에는 ATLUS와 완전히 연을 끊게 된다. 이후에는 게임 회사 '주식회사 가이아'를 설립해 몇몇 게임을 개발했다.

이렇듯 초기 여신전생 시리즈 개발에 크게 관여하고, 공격적으로 프랜차이즈를 확장시켰으나 그가 프로듀서가 된 이후 여신전생 시리즈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하강하며 침체기에 빠졌다. 부진에 빠진 여신전생 시리즈는 그가 떠날 때까지 뚜렷한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였고 ATLUS 자체가 이리저리 헐값에 팔리며 폐업 일보직전 상황까지 몰렸으나, 진 여신전생 3 녹턴의 디렉터였던 하시노 카츠라 페르소나 3 페르소나 4를 연속으로 히트시켜 반등에 성공, 회사도 살아나고 시리즈의 열기도 페르소나 5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ATLUS 퇴사 이후 그가 창립한 가이아의 게임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4] 결국 주식회사 가이아는 2010년 실질적으로 폐업하게 된다.[5]

3. 참여작

4. 기타



[1] 게임의 스태프롤에선 Cozy Okada라는 명의를 주로 사용한다. [2] 주로 파칭코 제작 회사로 유명하지만 80년대 당시 아케이드 게임 업계에 뛰어들기도 했다. [3] 사실 처음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할 당시 그의 업무는 업무용 기계설계, 즉 하드웨어 제작자였다. 테크모에 입사한 이후 게임 개발에 흥미를 느끼고 어셈블리어를 독학해 프로그래머로 전직한 사례. [4] 폭스소울 : 잃어버린 전승은 괜찮은 평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한 데다가 이 게임은 가이아가 아닌 다른 회사 게임 리퍼블릭이 주축이 되어 개발한 게임으로, 오카다 코지와 가이아는 협업이라는 형태로 보조 개발사로 참가한 것이기 때문에 가이아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개발자 크레딧만 봐도 폭스소울을 개발한 게임 리퍼블릭의 개발진은 50명은 가뿐히 넘어가는데 가이아의 개발진은 단 7명밖에 안 된다. 구체적으로는 폭스소울과 코디드소울, 2개의 자매 게임이 동시 개발되었고 폭스소울은 게임 리퍼블릭이 주축이 되어 개발하고 코디드소울은 가이아가 주축이 되어 개발했다. 두 게임이 서로 개발사는 다르지만 동일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서로 약간이나마 협력을 한 것인데, 게임 리퍼블릭이 개발한 폭스소울은 흥행하고는 별개로 괜찮은 평을 받았으나 가이아가 개발한 코디드소울은 평가도 망하고 흥행도 망한 망작으로 출시되었다. 오히려 폭스소울 출시 이후 가이아가 개발한 코디드소울이 폭스소울과 비교되어서 가이아의 평가는 더더욱 떨어지기만 했다. [5] 공식적으로 폐업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개발 중이던 게임들이 모두 취소되었고 홈페이지도 2010년 이후 '휴지 중'이라는 문구만 남긴 채 닫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