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15:39:04

옌스 노보트니

FIFA 공인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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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2183a> 이름 옌스 노보트니
Jens Nowotny
출생 1974년 1월 11일 ([age(1974-01-11)]세)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카를스루에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직업 축구선수 ( 수비수 / 은퇴)
에이전트
소속 선수 SV 슈필베르크 (1979~1985 / 유스)
G.프리드리히슈탈 (1985~1990 / 유스)
카를스루어 SC (1990~1991 / 유스)
카를스루어 SC (1991~1996)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6~2006)
NK 디나모 자그레브 (2006~2007)
국가대표 48경기 1골 ( 독일 / 1997~2006)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은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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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 말 혜성처럼 나타난 독일 출신의 거물급 수비수이자 2000년대 초반 바이어 레버쿠젠의 전성기의 주역이댜.

2.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인 수비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태클 능력과 훌륭한 공간 커버 능력, 수비수의 기본 덕목인 피지컬과 수비수 조율 능력까지 갖춘 토털 패키지형 수비수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준높은 패싱력을 지녔으며 노보트니의 최대 장점이 바로 볼간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3. 클럽 경력

3.1. 카를스루어 SC

1991년 1군에 데뷔해 1996년까지 103경기에 출전하며 좋은모습을 보였다.

3.2. 바이어 04 레버쿠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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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레버쿠젠에서 2006년까지 10년간 뛰며 231경기에 출전했고, 카르스텐 라멜로프와 함께 레버쿠젠의 전성기시절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물론 2001-02시즌 콩트레블 시즌에도 주전으로 뛰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연속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3.3. NK 디나모 자그레브

2006년 NK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3년. 그러나 계속해서 부상으로 힘들어했고 2006년 8월 19일 당한 부상으로 인해 수술까지 들어갔으나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2007년 1월 22일 33살의 나이에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에서 은퇴했다.

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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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90일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프레디 보비치와 교체되며 데뷔했으며 이후 48경기에 출전했다.

첫 메이저대회는 UEFA 유로 2000이었고, 조별리그 3경기 모두 풀타임 출전하였으나 팀은 녹슨전차라는 오명만 들은며 1승도 하지 못한 채 조 최하위로 탈락하였다.
2002 한일 월드컵은 아쉽게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팀은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별명의 맞게 부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성적은 거두기 힘들 것으로 보였으나[1] 뜻밖에도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2]

두번째 메이저대회는 UEFA 유로 2004였고, 노보트니는 조별리그 1차전과 3차전 두 경기에 풀타임 출전하였으나 이번 유로대회도 팀은 1승도 하지 못한 채 조3위로 탈락하였다.

마지막 메이저대회는 2006 독일 월드컵이었는데, 더이상 팀에서 주전이 아니었던 노보트니는 벤치만 지키다 포르투갈과의 3,4위전 한경기만 풀타임 출전하였다.

당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비진은 빌드업은 커녕 상대의 강한 압박에 허둥지둥하는 수준이었고 유로 1996 이후부터 녹슨 전차군단이라 불리며 조롱을 당할 정도로 크게 암울한 시기었다. 그 암울한 대표팀 시절에 노보트니는 좋은 수비력 뿐만 아니라 볼 컨트롤 및 탈압박과 좋은 패싱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대표팀 수비진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빌드업에 의존하는 독일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해 주며 더 나아가 공격루트의 다양성을 제공해 주었다.

같이 합을 맞췄던 크리스티안 뵈른스와, 토마스 링케는 기본적인 수비수 덕목은 뛰어나지만 패싱력이 좋지 않았고,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 평가받는 파비안 에른스트, 프랑크 바우만, 하노 발리치는 국대에서만큼은 호러급 경기력을 보였다. 그나마 노보트니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던 2002 한일 월드컵의 경우는 카르스텐 라멜로프 리베로 위치에 있으면서 후방 빌드업을 지원하며 노보트니의 공백을 잘 채워줬다. 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 이후에는 라멜로프가 노쇠화로 인해 대표팀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독일 대표팀 수비진에서는 노보트니 외에 빌드업을 이끌어 줄 선수가 없었다.

5. 은퇴후

은퇴이후 INSOCCER OHG INSOCCER OHG라는 회사에서 축구 에이전트를 맡고있다.


[1] 노보트니 외에도 뵈른스, 다이슬러, 숄 등 주전급 선수들의 부상도 유독 많았기 때문에 화려했던 독일 시절에 비하면 좋은 성적은 당연히 나오기 어려워 보였다. [2] 물론 역대급 대진운도 크게 한몫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