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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코스 CFP | 파나티나이코스 AO | ||||
Olympiacos CFP | Panathinaikos AO | ||||
영원한 적들의 더비(Ντέρμπι των αιωνίων αντιπάλων) | |||||
{{{#!folding [ 종합 전적 펼치기 · 접기 ] |
종합 전적(축구) (2024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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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코스 FC | 무승부 | 파나티나이코스 FC | |||
Olympiacos FC | Panathinaikos FC | ||||
87 | 77 | 57 |
종합 전적(농구) (2024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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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코스 BC | 파나티나이코스 BC | |
Olympiacos BC | Panathinaikos BC | |
146 |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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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Ντέρμπι των αιωνίων αντιπάλων. 그리스를 양분하는 종합 스포츠 클럽 올림피아코스 CFP와 파나티나이코스 AO의 더비 매치로 '영원한 적들의 더비', 혹은 '영원한 원수들의 더비'라 번역한다. 또, 모든 전투의 어머니(μητέρα των μαχών)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 중 하나다.두 팀은 축구, 농구, 배구, 수구 등 여러 종목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나, 태생이 축구팀이었던 만큼 일반적으로 두 팀의 더비라 하면 축구 더비를 말한다. 축구 외에는 농구가 가장 유명하다.
2. 역사
파나티나이코스는 아테네 시의 부촌 중 하나인 암벨로키피가 연고지이고 올림피아코스는 아테네 시의 외항인 피레아스가 연고지이다. 아테네와 피레아스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테네는 명실상부한 그리스의 중심지였고, 피레아스는 아테네를 수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여서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아테네와 피레아스를 13km짜리 성벽으로 연결하여 스파르타의 침공에 대비했던 역사가 있다. 이후 근현대에 접어들어 아테네의 영향권이 비대해지면서 두 도시는 '아테네 도시권'으로 한데 묶이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파나티나이코스가 아테네에서 먼저 창단되고, 뒤이어 올림피아코스가 피레아스에서 창단되어 각자 지역의 시민들을 팬덤으로 흡수하였다. 따라서 파나티나이코스가 수도의 상류층을, 올림피아코스가 항구의 노동자 계층을 상징하는 클럽으로 자리매김하였다.두 팀의 첫 맞대결은 1925년 6월 28일의 친선 경기였고 결과는 3:3 무승부였다. 이후 파나티나이코스는 그리스 리그의 2번째 시즌이었던 1929-30 시즌을 우승으로 마무리하여 먼저 우승을 달성하였고, 1930년 6월 1일 리그 경기로 올림피아코스와 첫 공식전을 벌여 8:2로 크게 승리하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시즌부터 올림피아코스가 리그 최고의 팀으로 부상하여 맞섰다.
올림피아코스는 1930년대 내내 리그를 압도하며 파나티나이코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팀의 관계가 지리적으로는 이웃이고 계층적으로는 정반대인 상황에서 올림피아코스가 승승장구하면서, 두 팀은 자연스럽게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또한 지금은 두 팀 모두 그리스를 완전히 양분하는 전국구 클럽이 되어서 서포터들의 계층 의식이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각자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뭉쳐 계층 의식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두 팀은 초기부터 격렬하게 대립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파나티나이코스는 196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때도 올림피아코스에 우위를 점하였으나, 그 외 시기에는 대부분 올림피아코스가 앞섰다. 결과적으로 2018-19 시즌까지 올림피아코스가 44회 우승, 파나티나이코스가 20회 우승을 기록하여 올림피아코스가 크게 앞서고 있다. 특히 1996-97 시즌부터는 2017-18 시즌에 AEK가 끊어내기 전까지 올림피아코스의 기나긴 독주가 이어졌다. 총 21시즌에 해당하는 이 기간 올림피아코스가 7연속 우승만 2번 하는 등 무려 19회 우승을 기록, 2회 우승에 그친 파나티나이코스와 격차를 크게 벌렸다. 통산 상대 전적 역시 올림피아코스가 적지 않은 차이로 우세하다.
대신 파나티나이코스는 올림피아코스보다 유럽 대항전에서 훨씬 좋은 성적을 냈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통산 랭킹은 참가 횟수가 많은 올림피아코스가 조금 더 높지만,[1] 올림피아코스가 8강이 최고 성적인 반면 파나티나이코스는 4강에 총 3번 진출했으며 그 중 1970-71 시즌에는 결승까지 올라가 그리스 클럽 중 유일하게 결승 진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 한쪽이 리그에서 앞서고 다른 쪽이 국제 대회에서 앞선다는 점에선 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 레인저스와 셀틱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림피아코스도 유로파 컨퍼런스리그를 우승하면서 이제는 유럽 대항전도 비슷한 상황에 왔다고 본다.
2.1. 농구
2019-20 유로리그 12라운드, 27라운드 경기. |
올림피아코스는 1992-93 시즌부터 리그 5연패를 달성하고 유로리그에서도 강호로 자리잡았으나 그 전까지는 리그 4회 우승에 불과한 그저 그런 팀이었고, AEK나 아리스가 파나티나이코스의 대항마 역할을 하였다. 또한 올림피아코스의 첫 전성기 이후 오히려 파나티나이코스의 리그 독식이 이전보다 심화되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2018-19 시즌까지 파나티나이코스가 37회 우승, 올림피아코스가 12회 우승으로 파나티나이코스가 크게 앞서고 있다. 통산 상대 전적도 파나티나이코스가 크게 우세하다.
유로리그에서는 90년대부터 두 팀 모두 손꼽히는 강팀으로 도약하였으나, 역시 파나티나이코스가 7회 우승으로 3회 우승을 기록한 올림피아코스보다 성적이 좋다.
3. 폭력성
2007년에는 여자 배구 더비가 있기 전 양 서포터들 간에 칼부림이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 그리스 전역에서 스포츠 활동 일체가 2주간 금지되었다. 또 2015년에는 파나티나이코스 농구 팀에서 올림피아코스 농구 팀으로 이적한 스타 선수 바실리스 스파눌리스가 경기 도중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의 린치를 피해 라커룸으로 도주하는 일이 일어났다.
2023년에는 남자 배구 경기에서 훌리건들이 난동을 일으켰는데 훌리건의 난동을 진압하려던 경찰관이 18세 남성이 발사한 조명탄에 허벅지를 맞고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어서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으나 전신 합병증에 걸려서 3주 만에 사망하였다.
4. 상대 전적
4.1. 축구
축구 | ||||
대회명 | 경기 수 | 올림피아코스 승리 | 무승부 | 파나티나이코스 승리 |
수페르리가 엘라다 | 175 | 68 | 62 | 45 |
그리스 컵 | 38 | 19 | 10 | 9 |
그리스 리그 컵 | 2 | 0 | 2 | 0 |
합계 | 215 | 87 | 74 | 54 |
4.2. 농구
농구 | ||||
대회명 | 경기 수 | 올림피아코스 승리 | 파나티나이코스 승리 | |
범그리스 챔피언십 | 8 | 3 | 5 | |
아테네-피레아스 챔피언십 | 32 | 15 | 17 | |
A1 에스니키 | 199 | 87 | 112 | |
그리스 컵 | 26 | 7 | 19 | |
유로리그 | 19 | 12 | 7 | |
합계 | 284 | 124 | 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