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세 불문학의 대표작
Roman de Renart
여우 이야기
내 여러분에게 차라리 우스개 이야기를 들려드림이 나으리니, 제공(諸公)께서 어떤 설교나 성자의 전기에 귀를 기울일 분들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제공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오직 심심파적거리의 이야기리니, 이제부터 조용히 들으시라…. 사람들이 자주 나를 미친놈 취급하나, 내가 학교에서 얻어들은 바에 의하면, 지혜로운 말은 미친 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하더이다. - 서문
12-13세기에 필사본으로 정리되었으며,
이솝우화나 12세기
겐트의 니바르두스(Nivardus)에 의해 창작된 우화집 이센그리무스(Ysengrimus), 인도의 판차탄트라 등 유구한 전통을 갖고있는 동물우화에 기반하였다. 중세 프랑스 시정문학(littérature bourgeoise)의 걸작이라 불리며 봉건사회의 가치관이나 종교적 권위를 가차 없이 풍자하는 것이 특징이다.주인공 여우의 이름 Renart는 독일어의 Reinhart(매우 약삭빠르다)에서 유래했는데, 이 이야기가 어찌나 인기 있었는지 renart는 기존의 프랑스 단어 goupil을 대신해 여우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자리잡았을 정도.[1] 말하자면 레고 때문에 모든 블럭 장난감이 레고로 불리는 것, 다이너마이트가 안전성을 강화해 인기를 얻자 다이너마이트가 폭약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것과 비슷하다.
1.1. 줄거리
주인공은 동물 왕국에 갖은 소요를 불러일으키는 여우 르나르. 늑대 이장그렝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닭들을 함부로 잡아먹고, 보다못한 사자왕이 곰이나 고양이 등을 보내서 잡아오라 해도 간사한 꾀로 속여넘겨 동물왕국의 주적이 되어버린다.좋게좋게 말로 해결을 보려던 사자왕의 역린을 건드려 결국 동물왕국 전체가 르나르를 쫓는다. 르나르는 자신의 성채에 틀여박혀 몇 달을 버티고 다른 동물들은 성밑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데, 그들이 잠든 사이 르나르는 몰래 내려와 여왕을 겁탈하더니 자는 동물들의 꼬리를 묶어놓고 도망간다.
쫓다 쫓다 지친 동물들은 '저놈은 동물이 아니라 마귀가 분명해'라며 두 손 다 든다. 확실히 하는 짓을 보면 주인공인데도 사악 그 자체다(...)
하지만 고생하기도 엄청 많이 고생해서 붙잡혀서 처맞거나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 마지막에는 왕궁으로 불려와서 숙적 이장그렝과 결투를 벌인다. 죽을 뻔하다가 르나르 아내의 간청으로 살아나고, 회심해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개심의 길을 걷는 듯하지만... 그놈의 고기 맛을 못 이겨서 결국 닭을 잡아먹게 다시 방랑의 길에 나서는데, 다른 동물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혀를 차며 이야기가 끝난다.
1.2. 동물...?
참고로 등장인물은 대부분 동물인데 이 동물들의 위치가 상당히 미묘하다. 일단 말을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제는 동물끼리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도 말을 한다. 그리고보면 옷도 입고 다니고 집도 짓고 살고 아무튼 사람하는 짓을 다 한다. 여기까지는 우화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을 타고 다닌다는(...) 묘사가 있다. 대체 동물들이 타고 다니는 동물은 어떤 존재일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르나르의 죄 중에 동물을 잡아먹은 것이 있는데[2] 그럼 다른 육식동물들은 뭘 먹고 사는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없다.(...) 햄을 먹는다는 말은 나오지만...
1.3. 영항력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온 우화로, 영어로는 Reynard, 독어로는 Reineke Fuchs라 하며, 그렇기에 읽다보면 어디선가 들은듯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까마귀를 감언이설로 속아넘겨 입에 물고있던 치즈를 앗아간다든지, 늑대에게 허풍을 쳐서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에 꼬리를 집어넣고 낚시를 하게 한다든지... 이 낚시 이야기는 심지어 동남아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일화의 골격이기도 하다. 거기서는 여우가 아니라 재칼로 등장해 꾀를 부린다. 그만큼 그 원형이 오래 전에 퍼진 패턴.
원본을 읽어보면 늑대 이장그렝의 영 안좋은 곳이 뜯겨나가 고자가 되고, 마누라 에르장은 이 사실을 알고 난 이제 뭔 낙으로 사나하며 바가지를 긁는 등, 상당히 잔인하며 절대로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안 될 것 같지만(...) 어쨌든 고전은 고전인지라 만화나 동화책 등으로 활발히 각색된다.
프랑스 학생들이라면 거의 반드시 읽는 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1.4. 관련 문서
2. 모리미 토미히코의 소설
모리미 토미히코 소설중에서 상당한 이색작으로 일본의 교토를 배경으로 한것을 제외하고,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어두운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굳이 비슷한 성향의 소설을 찾는다면 <요이야마 만화경>이 있지만, 그래도 이쪽은 밝은 에피소드가 꽤 많다.
4개의 에피소드 모두 기담 성격이 강하며, 모리미 토미히코가 주인공들의 허세로 점철된 청춘드라마에만 재능을 발휘하는게 아니라는걸 입증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작가가 쓴 교토를 배경으로 한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세계 공유를 하지 않는다. 펭귄 하이웨이와 더불어서 모리미 토미히코 소설 중, 상당히 특이한 포지션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이스라엘의 애니메이션
[1]
나중에 renart에서 renard로 철자가 약간 바뀌었다.
[2]
사실 이것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