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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colbgcolor=#fff,#000>양왕(梁王) |
최종직위 | 상국(相國) |
성 | 여(呂) |
명 | 산(産) |
생몰연도 | ? ~ 기원전 180년 |
사망지 | 장안(長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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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한의 인물로, 한나라의 첫 번째 외척세력인 여(呂)씨 가문의 제후왕 겸 장군.고황후 여씨의 오라버니 여택의 아들이며 여태의 아우로, 여택이 장수로서 공을 세웠기에 여택이 죽으면서 형과 함께 작위를 받아 교후(交侯)가 되었다.
2. 생애
2.1. 전기 생애
초한전쟁 당시에는 어떤 활약을 했는지 불분명하다. 이 당시 나이가 매우 어렸거나, 능력이 없어 딱히 활약을 못 했을 수도 있다.2.2. 왕의 자리에 오르다
초한전쟁땐 조용하다가 갑툭튀하여 양나라의 왕이 된다. 그러나 여산은 양나라로 가지 않고 장안에 남아서 황제의 태부를 맡았다. 여산의 딸이 조왕 유회의 왕후가 되었으나, 조왕은 이 왕후로 인해 자유를 잃었고 사랑하는 첩이 이 여산의 딸에게 짐살당해 자결했다. 고황후는 조왕의 후사를 끊고 대왕 유항으로 대신하려 했으나그러다 기원전 180년에 여후가 병들어 죽을 때, 여산은 상국에 임명되어 장안의 남군을 통솔하며 북군을 통솔하는 여록과 함께 중앙군을 장악하게 된다. 여후는 유언으로 '내가 곧 죽을 텐데 그러면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니 내 장례를 미루고 군사들을 동원해 황제를 사수하라'라는 말을 남겼는데, 과연 여후가 죽자 주허후 유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장은 자신의 아내이자 여록을 딸을 정보원으로 이용해 여록의 움직임을 파악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