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20:52:58

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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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

1. 개요

酈寄
생몰년도 미상

전한(前漢)의 인물. 곡주후(曲周侯) 역상의 아들, 역이기 조카다. 자(字)는 황(況).

2. 행적

사기 번역등관열전(樊酈縢灌列傳)에서 역상 열전의 말미에 살짝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특별히 대활약을 하거나 그런 행적은 없고, 그저 역상의 평범한 아들이었는데 다만 역기는 여후의 조카인 여록(呂祿)과 친분이 있었다. 유방 사후 여씨가 천하를 장악해서 주발, 진평 등은 가만히 기회만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기원전 180년에 여후가 죽으면서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다만 군사권을 가진 여록을 껄끄러웠고, 이에 주발과 진평은 사람을 시켜 역상을 위협하여 손을 쓰게 만들었고, 역상은 어쩔 수 없이 역기에게 여록을 유인하도록 시켰다. 역기는 여록에게 자기 땅은 내버려두고 장안에서 뭘 하냐는 것이냐는 식으로 온갖 말로 구슬리다가, 여록을 꾸짖는 여수에 의해 일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아예 주발과 작당하고 황명을 사칭해서 군권을 빼앗았고, 군사를 손에 넣은 공신들은 곧 여씨를 몰살시켰다.

한나라 입장에서 보면 권력을 훔친 외척을 처단한 대의멸친의 행위지만, 친구 사이로 치면 배신 행위인지라 당시 사람들은 역기가 친구를 팔아먹었다면서 비난했다고 한다. 물론 반대로 했더라도 아버지를 버린 패륜아 소리만 들으면 천행일테고 여씨가 승리하여 제위를 찬탈하지 않는한 아예 여씨 일파로 몰려 역적으로 처형되고 멸족되었을테니 어느 쪽을 골랐어도 욕을 먹었을 운명이었다.

같은 해에 아버지 역상이 세상을 떠났고, 이후 기원전 154년 오초7국의 난이 일어나자 조나라를 공격하는 장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10개월이 지나도 조나라를 제압하지 못했고, 결국 제나라를 공격해 먼저 함락했던 난포(欒布)가 도움을 준 후에야 조나라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기원전 149년에는 평원군(平原君)[1]이라는 여자 부인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효경황후 왕씨의 어머니로, 황제 장모였다. 신하가 황제의 장모를 아내로 삼으려고 들어 불경죄를 범하자, 황제인 경제는 당연히 대노했고 결국 역기의 작위가 철폐되었다. 대신 역상의 다른 아들인 역견(酈堅)이 작위를 잇게 된다. 그 이후 행적은 불명이나 행적이 행적인만큼 이후 생애가 영 좋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처음과 마지막 기록의 간극이 꽤나 크기에 백부와 부친만큼은 아니어도 당시에는 꽤나 장수했긴 했을 것이다.


[1] 전국시대 평원군과는 다른 인물이다.이쪽은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