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4 09:21:10

에리베르토 에레라

에리베르토 에레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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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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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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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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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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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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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베르토 에레라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953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MVP
에리베르토 에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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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eriberto Herrera.jpg
이름 에리베르토 에레라
Heriberto Herrera
본명 에리베르토 에레라 우드리사르
Heriberto Herrera Udrizar
출생 1926년 4월 24일
사망 1996년 7월 26일 (향년 70세)
국적
[[파라과이|]][[틀:국기|]][[틀:국기|]] |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과람바레
포지션 풀백
신체조건 185cm | 78kg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47~195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53~1959)
국가대표 5경기 ( 파라과이 / 1953)
1경기 ( 스페인 / 1957)
감독 라요 바예카노 (1959)
CD 테네리페 (1960~1961)
그라나다 CF (1961~1962)
레알 바야돌리드 CF (1962)
RCD 에스파뇰 (1962~1963)
엘체 CF (1963~1964)
유벤투스 FC (1964~1969)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69~1970)
UC 삼프도리아 (1971~1973)
아탈란타 BC (1973~1974)
UD 라스팔마스 (1975~1976)
발렌시아 CF (1976~1977)
RCD 에스파뇰 (1978)
엘체 CF (1978~1979)
UD 라스팔마스 (1982)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감독
3. 스타일 & 평가
3.1. 선수3.2. 감독
4. 뒷이야기5. 수상
5.1. 선수
5.1.1. 클럽5.1.2. 국가대표5.1.3. 개인
5.2. 감독
5.2.1. 클럽

[clearfix]

1. 개요

파라과이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그의 고향 과람바레에서 축구를 시작한 에레라는 1947년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성인 축구 무대에 데뷔했다.

1953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파라과이가 우승하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이 대회에서 4명의 선수를 영입했고 에레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1955년 10월 16일, 데르비 마드릴레뇨에서 에레라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상대하게 되었다. 전반까지 1:1 동점으로 마친 양팀이었지만 후반 2분 만에 레알 마드리드의 득점이 나오면서 아틀레티코는 1:2로 끌려가고 있었다. 후반 4분, 에레라는 질척한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시도했지만 공이 물웅덩이에 갇히면서 공의 소유권을 디 스테파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디 스테파노는 당연하게도 팀의 쐐기골을 넣었고 아틀레티코는 결국 2:3으로 패배했다.

에레라는 아틀레티코에서 6년간 87경기를 뛰었다.

2.1.2. 국가대표

2.1.2.1. 파라과이
에레라는 1953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파라과이의 사상 첫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2.1.2.2. 스페인
에레라는 스페인 대표팀으로 1958년 월드컵 지역 예선 스위스전에서 한 게임을 뛰었다. 스페인은 이 경기에서 스위스와 2:2로 비겼다.

2.2. 감독

에레라는 선수 은퇴 후 바로 라요 바예카노의 감독을 맡으며 긴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에레라는 스페인에서 처음부터 유명한 팀의 감독을 맡지는 못했지만 CD 테네리페 라리가에 승격시키는 등 능력을 보였고 1964년에 유벤투스 FC의 감독이 되었다.

유벤투스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인 에레라는 1969년까지 5시즌을 지도하면서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한 번씩 유벤투스에 안겨줬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유벤투스의 선수들은 에레라의 지도 방식에 의문을 품었고 울트라스 역시 바뀌는 유벤투스의 팀 컬러에 불만이 있었다. 결국 1969년에 에레라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팀을 옮겼고 그 해에 인테르 밀란의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1970-71 시즌에 팀을 떠났다.

에레라는 이후에 UC 삼프도리아 아탈란타 BC를 거쳐 스페인 무대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1982년까지 감독 경력을 이어가다 파라과이로 돌아갔다.

3. 스타일 & 평가

3.1. 선수

에레라는 선수 시절 스토퍼 역할을 하던 수비수였다. 그는 냉정하고 빠르며 공중볼 다툼에 강점을 보였다.

3.2. 감독

오만하고 야성적인 천재 오마르 시보리가 그토록 싫어했던 이 움직임은 전체적인 팀의 움직임에 대한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테너가 없었지만 비록 있었다 하더라도 오케스트라는 전체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를 지향했다. 딱딱한 칠판의 파라과이인 에리베르토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졌다. 반대로 그는 신념과 관습에서는 앞서 있었다.
로베르토 베칸티니(2013)

에레라는 수비에 전념하며 압박을 통해 상대 선수들을 지치게 했다. 에레라는 그의 팀 선수들에게 고정된 역할을 주지 않았지만 개개인에 부여된 임무는 있었고 그를 정확히 해결하길 바랐다. 그것을 위해 에레라는 때로는 감독보다 트레이너에 가까운 모습도 보였고 특권과 불복종을 인정하지 않는 엄격한 규율이 필수였다. 철의 상사로 불렸던 에레라의 코칭 스타일로 인한 유벤투스 FC 시절 오마르 시보리와의 갈등은 유명했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5.1.2. 국가대표

5.1.3. 개인

5.2. 감독

5.2.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