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5:36:17

엄기선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엄기매(嚴琪梅)
출생 1929년 1월 21일
본적 경기도 여주
사망 2002년 12월 9일 (향년 73세)
본관 영월 엄씨
학력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학과 수료
경력 대전 루시모자원 원장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

독립운동가 연미당과 상해임시정부 선전부장 엄항섭의 장녀이다.

2. 생애

엄기선은 1938년 12월경부터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의 전신인 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戰地工作隊)의 공작대열에 오희옥 등과 동참하여 일본군내의 한국인 병사에게 초모공작(招募工作)을 이행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적국의 상황을 수집, 보고하였다. 또한 대원들의 사기를 앙양시킴과 더불어 중국 국민들에게 항일투쟁의 의지를 전파했다. 엄기선은 박영준, 이재현, 노복선 등의 선배들과 함께였다.

이후 1943년부터는 부친 엄항섭의 곁에서 중국 측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중국에서 자행되었던 일본군의 만행을 국내 동포들에게 전달하였으며, 전쟁을 지양한다는 의미의 염전사상(厭戰思想)을 널리 선전하였다.

엄기선은 충칭(중경)의 투차오(土橋)에 위치한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방문하면서 한인 포로들을 위문하는 한편 일제의 쇠락과 한국의 독립을 예견하는 선전공작에 주력하는 등 광복이 이루어지는 시점까지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광복이 이루어진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엄항섭은 납북되고 모친 연미당이 주한미군의 군복을 빨래하며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리는 등 그들 가족은 각종 고초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엄기선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다니다 전쟁 중 수료했고, 이후 경기도 여주군에서 교편을 잡다가 남편 임동혁을 따라 대전에 내려가 1964년부터 대전광역시에 소재한 루시모자원의 운영에 참여하여 사회복지활동을 이행했다. 1970년 시어머니를 이어 루시모자원의 원장으로 2002년 까지 재직했다.

그의 공훈을 기리는 의미에서 1993년에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참고출처1:공훈전자사료관
참고출처2: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