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0:29:52

어의

1. 御衣2. 왕실 주치의3. 어이의 잘못된 표현

1. 御衣

임금이 입던 옷을 칭하는 단어. 보통 임금이 입던 옷이라고 하면 곤룡포를 먼저 떠올리는 편이다. 귀하신 분이 입던 옷이다 보니 값비싼 비단으로 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 임금은 비단이 아닌 무명으로 만든 어의를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5찬 이하의 수라상에 고기도 잘 먹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영조 임금의 검소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2. 왕실 주치의

御醫

궁궐에서 임금과 왕족들을 전담하는 의원이다. 태의(太醫)와 같은 말이다. 태의가 황제국이고 어의가 격하된 표현이라는 소리가 있으나 어(御)자는 황제에 관해서도 쓰이는 표현이며 조선에서도 태의라는 말을 썼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상(임금)께서 태의를 보내셔서 아무개를 치료하도록 했다.’라는 표현이 수두룩하다.

한국사에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어의 기록은 삼국사기 직관지에 나오는 신라의 공봉의사(供奉醫師)다. |#1 #2 '공봉'은 황제의 좌우에서 봉사하는 관직을 말한다. 즉, 신라 국왕의 바로 곁에 배치된 어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진흥왕 순수비에는 진흥왕을 보좌하는 약사가 등장하는데 불교의 약사여래 문서에서 설명된 것처럼 당시에는 의사와 약사가 엄격히 구분되지 않았으므로 순수비의 약사를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과거 제도 중에서 의술 관련 부분인 의태의(醫太義)에 급제한 의관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직위이자 정3품의 벼슬이다. 어의는 1명이 아니고, 2~3명 이상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어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력이 있는 의관들 중에서도 임금이 가장 신뢰하고 총애하는 의관이 어의가 될 수 있었으므로 의술은 물론, 뛰어난 처세술과 정치력도 필요했다.

어의라고 해도 의과가 잡과에 속했기 때문에 내의원 의원들의 신분은 대부분 중인이었지만 임금이나 왕족의 큰 병을 고치는 큰 공을 세운 어의는 정1품을 하사받고 양반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를 보필한 공으로 정1품 보국숭록대부 벼슬을 받은 허준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금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가 병에 걸렸을 때 임금이 어명으로 어의를 보내서 진료하도록 했다는 기록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어의가 실력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사실 임금이 그만큼 그 신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

여러 사극에서 임금이 승하하거나 응급상황에 처하면[1] 그 책임을 물어 처벌당하는 장면 때문에 극한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실제로는 다분히 형식적으로 처벌을 빙자한 휴가를 보냈다가 복직시켰다. 설사, 임금이 병으로 일찍 죽었다고 해도 오진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이상 처벌하지는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통틀어봐도 임금이 승하했을 때 어의가 처벌을 받은 경우는 단 4건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도 정말 처벌의 의미로 죄를 받은 어의는 오진과 잘못된 시술로 효종을 죽게 한 신가귀가 유일한데 그 신가귀조차도 다른 어의인 유후성이 왕에게 경고를 했는데 왕이 그래도 침을 놓으라고 해서 놓았던 점 등을 고려해 참형이 아니라 교수형으로 형을 낮추어 시신을 보전할 수 있게끔 했고 신가귀를 말리기까지 했던 유후성은 탄핵을 받고 유배를 갔다가 현종이 사면해서 곧 어의로 복귀했다.

다른 어의들도 임금이 승하했으니 감히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뜻으로 스스로 사직한 경우가 많고 스스로 사직하지 않았음에도 탄핵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기록된 경우가 그 유명한 허준을 포함해 총 여섯 건이 있으나 대부분 얼마 안 가서 다시 복직했으니 사실상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진짜 처벌이라기보다는 머리 좀 식히러 보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2] 임금도 사람이라 언젠가는 죽는 법인데 모시던 왕이 수명이 다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어의의 목이 달아나야 했다면 과연 어떤 유능한 인재들이 어의로 일을 하려고 들겠는가? 통념과 달리 조선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시대적 한계를 제외하면 현대인의 관점에서 봐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면모가 많았으며 수명이 다해서 사망한 것과 의료사고로 사망한 것 정도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었다.

허준, 대장금 등 어의가 중심이 되는 사극에서는 훌륭한 성과를 올리지만 그 외의 사극에서는 어의의 존재 자체가 ' 사망 플래그'인 경우가 많다. 어의가 진찰을 하면 중병이 확진되어서 병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 혹은 왕실의 음모에 휘둘리는 역으로 나오기도 한다. 가령 어의를 협박하거나 뇌물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병환을 조작해서 정적을 방심하게 만들거나, 약에 독을 넣어 직접적인 독살을 시도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일부러 처방을 잘못하게 만들어서 서서히 건강을 해치게 만드는 형태 등으로 나온다.

실록을 보면 전문 의관이 아닌 정승 등 고위 관료가 약방 도제조라는 직함을 달고 어의들을 감독하며 왕실의 치료에 참여하는 장면이 보인다. 요즘으로 치면 국무총리나 보건복지부장관이 대통령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여길 수 있겠으나 의원이 지금처럼 많지 않기도 했고 행정학과 의학이 각각 전문화되기 이전이기도 했기 때문에 양반 중에서도 의술을 익힌 인물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유의(儒醫)라고 불렀으며 동의보감 편찬에 참여했던 정작(鄭碏)이 대표적인 예시고 류성룡이나 허목도 의술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세종대왕도 대군 시절 동생 성녕대군의 약처방에 관여하였고 정조는 아예 본인의 처방에 직접 관여하였다.

3. 어이의 잘못된 표현

여기서 '어이'는 ' 어처구니'와 동일한 뜻이다. 단어나 말의 뜻이란 의미의 어의(語義)라는 단어도 있지만 이를 놓고 "어의 없다"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보통 어처구니없는 상황, 기가 막히는 상황에서는 "어 없다"가 맞지만 "어 없다"라고 쓰는 어 없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기자조차 틀린다. #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허준의 종영특집쇼에서 등장 배우들을 데리고 찍은 콩트에서 어이 없음의 어이와 어의가 발음이 비슷하다는 개그를 처음으로 쳤고 마지막에 이게 어이 없음의 어원입니다라고 마무리를 짓는 개드립을 치기도 했다.

물론 일부러 1, 2번 문단을 노리고 어의 없다는 표현을 쓰거나 어그로 끌려고 어의 없다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1]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충신 종간이 어의를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 보자. 궁예가 독화살을 맞고 사경을 헤맬 때 어의의 멱살을 잡고 강압적으로 몰아붙였으며 궁예가 정신이 돌아온 후 간헐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자 어의는 '심통'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종간은 금대를 시켜 그 어의를 살해했다. [2] 당시 조선시대 관료의 공식적인 휴가는 40일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관료들도 사직을 청했다가 얼마 뒤 복직하는 식으로 사실상의 휴가를 지낸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