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양남구(梁南球) |
이명 | 양남구(梁南久, 梁南求) |
자 | 왕석(王石) |
호 | 낙천(樂泉) |
본관 | 제주 양씨 |
생몰 | 1892년 9월 9일 ~ 1976년 4월 26일 |
출생지 |
전라도
제주목 중면 용담동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1] |
사망지 |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도순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양남구는 1892년 9월 9일 전라도 제주목 중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양용환(梁用環)의 아들로 태어나 이후 제주도 우면 서홍리(현 서귀포시 서홍동)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 1910년 경술국치에 분기하여 구국운동에 뜻을 두었으며, 1918년 10월 5일 법정사 승려 김연일과 강창규 등이 항일 투쟁을 전개하자 이에 가담하여 주민들을 규합해 일제 경찰을 축출하기 위한 시위를 벌이고 중문주재소를 습격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8월 7일 감형되어 석방된 그는 제주도로 돌아가 대정군 중면 도순동으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76년 4월 26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양남구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