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23:40:04

앙리 구로

파일:Général_Gouraud_1923.jpg
이름 앙리 구로 (Henri Gouraud)
출생 파리, 1867년 11월 17일
사망 파리, 1946년 9월 16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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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리 구로(Henri Gouraud)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919년에서 1922년 사이에 레반트 고등 판무관으로써 프랑스 식민주의에 핵심인물 중 하나였다.

2. 생애

앙리 구로는 파리에서 태어나 명문 고등학교인 스타니스라스 학교에서 수학했다. 1888년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11년에 대령이 된 구로는 모로코로 발령받고, 이듬해 모로코의 식민화를 맡고 있는 위베르 리오테 장군을 만난다. 1차세계대전에 참전해 모로코군 제4군단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으로 건너가 다르다넬스 전투에 임한다.

1916년 12월에 국무총리 아리스티드 브리앙이 리오테에게 국방장관 자리를 주어서 리오테가 파리로 복귀하자, 구로가 그를 이어 모로코의 총독이 되었다. 1918년에 1차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한다.

1920년 산레모 회담에서 시리아가 프랑스의 위임령으로 지정받고 구로는 대시리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1] 1921년에 시리아 민족주의자인 아흐메드 칸자르에게 암살당할뻔 했지만 무사히 살아남는다. 이어서 1920년 9월 1일에 대레바논국을 건국하고 스스로 총독이 된다. 그는 레바논의 내부 분열을 통해서 군림하는 정책을 펼쳐, 드루즈 알라위파를 나누고 소수파를 지지해서 다수인 수니 무슬림을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1923년 11월 22일, 프랑스는 레바논을 장기적인 식민지로 만드는데 실패하고 구로는 프랑스군을 철회해야 했다.
[1] 이때에 시리아에 와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살라흐 앗 딘의 무덤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살라흐 앗 딘의 관 앞에서 "살라딘, 우리가 돌아왔다. 여기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초승달에 대한 십자가의 완전한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호언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