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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الأكبر الإمام수니파 이슬람의 최고지도자로 무슬림 율법의 최고 권위자로 여겨진다. 알아즈하르 대학교[1]와 알아즈하르 모스크를 감독하는 직책이다. 다만 쉬아 아야톨라나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존재감이 국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순니 무슬림 사이에서도 그렇게 크지 않다. 대다수의 무슬림에게 현직 알아즈하르 이맘이 누구냐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한다.
2. 역사
2.1. 칼리파직 폐지 이전
원래 수니파 이슬람의 최고지도자는 칼리파였다. 이전까지 알라즈하르 대이맘직의 명칭은 알아즈하르의 무슈리프로 이집트에서도 강한 권위를 지닌 자리는 아니었다.[2] 그러나 알아즈하르 대학교가 이슬람 세계에서 손에 꼽는 학교였기 때문에 이슬람의 최고 학자로써 존경과 권위를 갖는 자리였다가 한 사건으로 알아즈하르 대이맘의 위상을 바꾸었다.2.2. 칼리파직 폐지 이후
1924년 튀르키예 대국민회의가 칼리파직을 폐지했다. 이로써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파로 즉위한 지 1292년만에 칼리파직이 폐지되었다. 당연히 수니파 국가들은 명목상이긴 해도 자신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칼리파직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크게 반발하였고 새로운 구심점을 필요로 했는데 칼리파처럼 세속적인 입장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서 율법 해석의 최고권위자인 알아즈하르 무슈리프가 새로운 수니파의 지도자로 떠올랐다.[3] 가말 압델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 1961년 알아즈하르 대이맘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3. 위상
수니파 이슬람의 지도자로 하디스와 이즈마, 끼야스를 해석하고 자체적으로 모범 이되는 주석을 쓸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해석은 수니파의 다른 어떤 이맘의 주석보다도 앞설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에서 수니파의 종주국은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인 사우드 왕조가 다스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이기 때문에 과거 칼리파나 현대 교황급 영향력을 보여주진 못한다.
[1]
이집트에 있는 대학교로 대이맘은 이 대학교의 총장직을 겸임한다.
[2]
이집트는
자체적인 칼리파를 선출했고
아바스 왕조가 멸망한 후 아바스 칼리파는
맘루크 술탄국에 의탁했다. 따라서 카이로는 965 ~ 1174년, 1261 ~ 1517년까지 약 500년 가까이나 칼리파의 도시였다
[3]
튀르키예는 강경 세속주의 국가일 뿐더러 민족주의 정책으로 아랍의 이슬람 종주로써의 권위를 완전히 부정하였다. 애초에 의회에서 종교지도자를 선출한다는 것 자체가 이란처럼 종교 아래 정치를 두겠단 의미가 아니라 정치가 종교를 감독하겠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