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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타깝다'의 어원이 되었다는 민간어원 설화에 등장하는 조선 세종 대의 여성.2. 설화
한 가지 설화는, 경상북도 청송에 안탁갑이라는 처녀가 있었고, 임금님에게만 시집을 가겠노라 고집을 부리던 안탁갑은 드디어 세종의 빈이 되었는데, 너무도 안탁갑에게 빠져 있는 임금을 걱정한 신하들이 그를 청파동으로 물리쳤다. 그런 이후 임금의 행차 소식을 들은 안탁갑이 행차의 길목에서 정성스레 만들어 온 미음을 올리고 세종은 이 미음을 단숨에 마셨는데 그때 두 사람의 괴로움을 두고 '세종과 안탁갑이의 사이 같다'고 했다는 것.(출처: 한말연구학회) #[1]또는, 세종시의 연기향토박물관이라는 사립박물관에서 재연공연을 하기도 했던 # 설화에서는, 1399년, 현재는 세종시 연동면 합강리에 있는 순흥안씨 마을의 안탁갑(安琸甲)이라는 예쁜 처녀가 커서 왕과 결혼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한양으로 진출해서, 무언가 왕이 살 것만 같은 대궐에서 대기를 했다. 그러다 깊게 닫혔던 문이 열리는데, 잘생긴 선비라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어릴 적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가마를 몰고 오겠다는 그 선비의 말을 뿌리치고 몰래 도망간다. 사실 그 선비는 세종대왕이었고, 세종대왕은 갑자기 떠나버린 그 여자의 이름 '안탁갑'을 슬픔에 몸져 누워 애타게 부르니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안탁갑으로 말을 하다가 안타깝다란 말이 굳어진 것이라는 얘기이다.[2]
3. 정설
그러나 안타깝다라는 표현의 어원에 관한 정설은 '속, 마음'을 뜻하는 '않'[3]에 답답하다의 옛말인 ' 답ᄭᅡᆸ다'가 합쳐져 만들어진 '*안탑ᄭᅡᆸ다'라는 표현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ㅅ계 어두자음군의 경음화 이후 '안탑깝다'로 발음되다가 발음의 용이성을 위해 '-탑-'의 받침이 ㄱ으로 동화된 뒤 탈락하며 '안타깝다'로 발음되게 된 것이다. # 반면 위의 安琸甲이라는 이름은 동국정운 기준 발음이 'ᅙᅡᆫ돡갑'[4]이며, 조선 전기 당시 현실 한자음은 지금과 같은 '안탁갑'이다. 안타깝다는 '안타까워'와 같이 활용하는 ㅂ 불규칙 용언이나, 한자어 유래인 단어의 'ㅂ'이 모음 앞에서 약화되어 'ᄫ'까지 되는 현상은 매우 어색하다. 더구나 한자어인 명사가 어근이 되어 파생될 때 '-ᄒᆞ다'가 붙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 이상하다. 이러한 점에서 '안탁갑 유래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5]4. 그 외
23년 8월 유튜버 슈카월드의 '안타깝다'의 뜻에 관련한 영상이 여러 커뮤니티의 인기글에 선정되어 회자된 바 있다. #1, #2
[1]
다만 기사의 내용은 이것은 민간어원일 뿐, 아래 문단과 같이 정설은 다르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2]
설화답게 오류가 있다. 연동면 합강리에 순흥 안 씨 집안이 자리잡고 살기 시작했을 때가 안윤희라는 인물부터인데, 이 분이 한성좌윤을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한성좌윤이라는 벼슬은 세조 12년에 생겨나는 벼슬이다. 그러니 설화대로 내용이 진행되려면 적어도 세조 12년이후나 되어야 가능하다는 소리다. 한성좌윤을 하다가 무슨 이유로 합강리로 내려간거니까. 물론 설화의 특성상 전해지면서 중간에 내용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는 여인의 이름은 물어보면서 어느 집안 여식인지는 왜 안 물어봤을까?
[3]
ㅎ 말음 체언으로, 현대어에서 '안'이 되었고, '아내', '아낙'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4]
정확히 말하면 琸은 동국정운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卓과 같은 竹角切이고, 卓은 '돡'으로 실려 있다.
[5]
우연의 일치일 수 있느나 희한하게도 소헌왕후의 본향이 청송이고, 외가집이 순흥 안 씨이다. 물론 안윤희라는 분과 소헌왕후의 할아버지 안천보는 서로 파가 다르다. 그런데 왕비가 살아 있을 때 심 씨 집안 여자들, 안 씨 집안 여자들끼리 모여서 잔치를 연 적이 있다고 한 걸로 보아 교류가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