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승화(安承華) |
이명 | 안승화(安昇華) |
본관 | 순흥 안씨 |
생몰 | 1892년 4월 5일 ~ 1951년 3월 20일 |
출생지 | 황해도 장연군 해안면 순계리[1] |
사망지 | 황해도 장연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승화는 1892년 4월 5일 황해도 장연군 해안면 순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2일 해안면 몽금포 장날을 이용해 안두삼, 안교은(安敎殷), 이창근(李昌根), 이종욱(李宗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그는 이날 백여 명의 시위대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시위대가 경찰주재소 앞에 이르자,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났고,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일본 경찰은 해산하여 돌아가는 시위군중을 동구 밖까지 쫓아가며 총격을 가하여 부상자는 더 늘어났다.이후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1년 3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안승화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