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고다드의 기타 정보
|
||||||||||||||||||||||||||||||||||||||||||||||||||||
|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
||
|
||
아서 고다드 Arthur Godard |
||
<colbgcolor=#eeeeee,#191919> 본명 |
아서 밀턴 고다드 Arthur Milton Godard |
|
출생 |
1878년
6월 14일 잉글랜드 체셔 주 스톡포트 |
|
사망 |
1955년
11월 11일 (향년 77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선수 ( 미드필더 / 은퇴) | |
소속 |
스톡포트 카운티 FC (1895~1899) 글로솝 노스 엔드 AFC (1899~1902) 리버풀 FC (1902~1914) 카디프 시티 FC (1914~1915) |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前 축구 선수. 초창기 리버풀 FC에서 활약했다.2. 클럽 경력
16세의 나이에 지역 교회에서 축구를 시작한 고다드는 스톡포트 지역 리그에서 아마추어로서 총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지역적인 명성을 알렸고, 이후 당시 히튼 노리스 로버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스톡포트 카운티 FC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는 1군에 진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구단의 리저브팀에서 두 차례 지역 컵 우승에 기여했다. 1897-98 시즌 말미에 그는 위건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1군 무대 데뷔전을 치렀고, 해당 경기에서 데뷔골을 득점하며 잠재력을 과시했다. 이후 1898년 12월에는 1군 스쿼드에 완전히 편입되어 활약했고 지역 컵에서 대단한 활약을 이어가며 여러 구단들의 이목을 끌었다. 결국 그는 글로솝 노스 엔드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고, 당시 랭커셔 리그 선수 중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풋볼 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팀이 최하위 성적을 기록하면서 바로 강등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1902년 2월까지 글로솝에서 뛴 그는, 이후 리버풀 FC의 톰 왓슨 감독의 눈에 띄어 460파운드에 리버풀로 이적하게 되었다. 안필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1902년 3월 8일 울버햄튼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며 걸출한 커리어를 이어갔다. 고다드는 리버풀 커리어 첫 3시즌 동안 단 2경기만 결장하는 대단한 경기 소화력을 보여주면서 리버풀의 측면을 지배했고, 1903년 강등을 경험하기는 하였으나 곧바로 리그 7득점을 올리며 1905년에 디비전 2를 우승, 팀의 승격을 직접 이끌었다. 1905-06 시즌에는 팀의 모든 경기를 소화하면서 본인 커리어의 최고점인 팀의 통산 두 번째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이후 고다드는 7시즌 동안 리버풀에서 한 시즌 평균 30경기를 소화하며 꾸준한 활약을 펼쳤고, 1913-14 시즌에 카디프 시티로 이적하기 까지 리버풀에서 전설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안필드에서 12년 동안 FA컵 23경기 연속 출전을 포함해 415경기에 나서 80골을 기록했으며, 부드러운 윙플레이로 인해 '우아한 아서'라는 이명을 얻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리버풀 선수로서 최초 공식전 400경기 돌파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카디프로 이적한 후 곧바로 선수 커리어를 은퇴한 그는, 머지사이드 지역에서 사업을 전개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1956년 5월 29일 지병으로 인해 타계하였고, 5월 31일에 안필드 공동 묘지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3. 기록
3.1. 대회 기록
- 리버풀 FC (1902~1914)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05-06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904-05
3.2. 개인 기록
- 리버풀 FC 최초 공식전 400경기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