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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샤쿠니 20-1대 샤 Արշակ | 아르사케스 3세 |
||
제호 | 한국어 | 아르사케스 3세 |
아르메니아어 | Արշակ | |
라틴어 | Arsaces III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371년 ~ 390년 | |
재위 기간 | 379년 ~ 3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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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샤쿠니 왕조의 20-1대 샤. 볼로가세스 3세와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실제로는 마누엘 마미코니안에게 내세워진 허수아비 군주에 불과했다.2. 생애
371년 파파스와 자르만도흐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남동생으로 볼로가세스 3세가 있었다. 379년 바라다테스가 마누엘 마미코니안의 정변으로 축출되어 로마로 망명한 뒤, 8살의 나이로 남동생 볼로가세스 3세와 함께 왕위에 올랐다. 그는 동아르메니아, 볼로가세스 3세는 서아르메니아를 맡았고, 자르만두흐트가 명목상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누엘 마미코니안이 전권을 쥐고 있었고, 두 왕과 왕태후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마누엘은 로마 제국이 자기들이 세운 군주 바라다테스를 축출한 것에 분노하여 아르메니아로 쳐들어올 것을 우려해 사산 왕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샤한샤 아르다시르 2세는 기꺼이 원군을 보내주고 아르메니아를 페르시아의 보호령으로 삼았다. 그러나 마누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 수비대를 적대시했고, 급기야 1만 명에 달하는 페르시아군을 몰살했다.
아르다시르는 이에 격분하여 구마드 샤푸르(Gumand Shapuh) 휘하의 군대를 파견하여 아르메니아를 침략하게 하였지만, 마누엘은 사산 왕조군을 격파하고 구마드 샤푸르를 죽였다. 바라즈가 이끄는 또다른 페르시아군이 투입되었으나, 마누엘은 이 역시 무찌르고 바라즈도 죽였다. 아르다시르는 포기하지 않고 마카한 장군이 이끄는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번에는 아르메니아 일부 지역을 공략했지만 곧 마누엘의 반격으로 참패하여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7년간 사산 왕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386년 사산 왕조의 침략을 연이어 격파한 마누엘이 사망했고 뒤이어 볼로가세스 3세도 사망했다.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아르사케스 3세에 충성하길 거부하고 사산 왕조 샤한샤 샤푸르 3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샤푸르 3세는 군대를 파견해 아르메니아의 대다수 영역을 확보하고 호스로프 4세를 왕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누이인 수르반두흐트(Zurvandukht)와 호스로프 4세의 결혼을 주선했다.
아르사케스 3세는 서쪽으로 후퇴한 뒤 로마 제국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동방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서방의 참칭자 마그누스 막시무스와 일전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어서 아르메니아에 군대를 보낼 겨를이 없었다. 그는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사산 왕조에 협상을 제안했다. 사산 왕조 역시 로마 제국과 정면 대결하길 원하지 않았기에 협상에 응했고, 양측은 아르메니아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이리하여 아르메니아는 북쪽의 테오도시오폴리스와 남쪽의 아미다까지 이어지는 경계에서 분열되었다. 또한 로마는 500파운드 가량의 금을 이란에 지불하기로 하였고, 이베리아에 대한 사산 왕조의 영도권을 인정하였다. 아르사케스 3세는 이 협정에 불만을 품고 호스로프 4세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로마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기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390년 사망한 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영토 마저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