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1 21:53:49

신문왕릉

신라 왕릉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81818,#e5e5e5

혁거세왕릉(오릉)

파사왕릉(오릉)

지마왕릉

일성왕릉

아달라왕릉(배동 삼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현재 소재 파악 불가

미추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현재 소재 파악 불가

내물왕릉
황남대총(소수설)

황남대총(소수설)

황남대총(다수설)

황남대총(소수설)

현재 소재 파악 불가

천마총(통설)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진평왕릉

선덕여왕릉

진덕여왕릉

무열왕릉

문무대왕릉(대왕암)

신문왕릉

효소왕릉

성덕왕릉

효성왕릉

경덕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현재 소재 파악 불가

원성왕릉(괘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헌덕왕릉

흥덕왕릉

희강왕릉

민애왕릉

신무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헌강왕릉

정강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효공왕릉

신덕왕릉(배동 삼릉)

경명왕릉(배동 삼릉)

경애왕릉

경순왕릉
수장급 능묘

대릉원( 금관총 · 금령총 · 봉황대 · 서봉총 · 식리총 · 천마총 · 호우총 · 황남대총)
금척리 고분군 · 서악동 고분군
구정동 방형분 · 김유신장군묘 · 김인문묘 · 김양묘 · 설총
}}}}}}}}}}}}

신문왕릉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
파일:hEgtBOyW_400x400_nobg.png 경주시의 관광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F5765> 경주 시내 경주읍성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첨성대& 동부 사적지대, ‧ 대릉원( 천마총, 황남대총) ‧ 노서 ‧ 노동동 고분군( 봉황대,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 경주 월성 분황사 월정교 일정교 황룡사지 황리단길 ‧ 경리단길 ‧ 경주 계림 ‧ 교촌마을 ‧ 최씨고택 ‧ 금장대
북부 유교문화권 양동마을 옥산서원 ‧ 운곡서원
송화산 김유신장군묘 태종무열왕릉 ‧ 서악동 고분군
소금강산 백률사 소금강산 탈해왕릉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남산 남산 나정 망덕사지 배동 삼릉 오릉 포석정 서출지 경주 삼릉 용장사곡 삼층석탑 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 지암곡삼층석탑 ‧ 탑곡마애조상군 ‧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 미륵곡석불좌상
낭산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 능지탑지 ‧ 최지원 독서당 ‧ 황복사지 3층석탑
토함산 토함산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석굴암 원성왕릉(괘릉) ‧ 토함산자연휴양림
동해안 감은사지‧ 봉길대왕암해변‧ 문무대왕릉 이견대 경주 양남 주상절리 ‧ 나정고운모래해변 ‧ 오류고아라해변
보문관광단지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 캘리포니아 비치) ‧ 신라밀레니엄파크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경주타워, 중도타워, 솔거미술관) ‧ 블루원리조트 블루원 워터파크 경주화백컨벤션센터 (HICO)‧ 명활성 보문호반길 ‧ 경주동궁원 ‧ 경주버드파크 ‧ 힐튼호텔 경주
교통 경주역 경주고속버스터미널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기타 골굴사 기림사 ‧ 화랑의 언덕 ‧ 흥덕왕릉 진평왕릉 ‧ 장항리 사지
※ 관광객들이 명소로 많이 찾는 곳은 밑줄 표시.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wiki style="margin:-10px"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4A2D5B><tablebgcolor=#4A2D5B>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신문왕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4A2D5B,#2d2f34><colcolor=#fbe673,#f9d537> 생애 및 활동 <colbgcolor=#fff,#1f2023> 생애
관련 장소 감은사 · 신문왕릉
관련 문서 만파식적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181호
신문왕릉
神文王陵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53-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무덤
면적 15,463㎡
지정연도 1969년 8월 27일
제작시기 통일신라
위치
}}}}}}}}} ||
파일:신문왕릉.jpg

神文王陵

사적 제181호

1. 개요2. 역사
2.1. 효소왕릉설2.2. 진평왕릉설

1. 개요

파일:external/www.gyeongjuimage.or.kr/s_%EC%8B%A0%EB%AC%B8%EC%99%95%EB%A6%8903(%EB%B4%89%EB%B6%84)_%EB%8F%84%EB%A1%9D198P.jpg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신라 제31대 국왕 신문왕 김정명의 능.

2. 역사

신문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낭산 동쪽에 장사지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신문왕릉은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전 시대의 신라왕릉보다 좀 더 장식물이 늘어나고 섬세해진 것이 보인다.[1] 경주시 울산광역시를 잇는 7번 국도 바로 옆에 있고 신문왕릉 정류장에 서는 경주시 시내버스도 대단히 많아서 접근성은 매우 좋은 편이다. 인근에 경주 사천왕사지, 망덕사지, 선덕여왕릉, 효공왕릉 등의 유적이 있으며 동해선 철길에서도 상당히 가깝다.

2.1. 효소왕릉설

사실 이 곳은 신문왕의 능이 아니라 아들인 효소왕의 능이라는 견해가 있다.[2] 신라왕릉은 각자 수 년~수십년의 텀을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양식이 변하는 흐름이 존재하는데, 일단 이 무덤은 주인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는 두 왕릉인 무열왕릉 성덕왕릉 사이 어떤 왕의 왕릉인 것은 거의 확실하다. 둘레돌 같은 석물 형태가 두 시대 사이 과도기기 때문이다.

효소왕릉설의 근거는 황복사 3층 석탑 금동사리함기에 새겨진 명문에 두고 있는데, 본래 황복사 삼층석탑은 신문왕이 692년 7월에 죽자 왕후와 왕위를 계승할 효소왕이 건립하였고, 몇년 뒤에 신목왕후와 효소왕이 죽자 706년에 신문왕의 차남 성덕왕이 불사리나 다라니경을 넣어 죽은 신문왕, 신목왕후, 효소왕의 명복을 빌었다는 것이다.

황복사는 원래 가장 먼저 승하한 신문왕을 위해 건립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경주 낭산[3] 동쪽에 있는 황복사 터 옆에 당시 신라 왕릉 주변에 장식하던 십이지신상이 파괴된 채로 흩어져 있으며 봉분도 무너진 채 남은 능터가 하나 있다. 그것이 진짜 신문왕의 능이고 배반동의 신문왕릉은 사실 효소왕의 능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배반동의 신문왕릉은 낭산의 '남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구황동 왕릉지라고 불리는 이 유적을 2017년 발굴조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기가 실제로 왕이 묻힌 무덤이 아닌 미완성된 왕릉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지 않고[4] 일부 석재는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의 기단을 보수하는 데 사용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유적은 신문왕릉이 아닌 효성왕의 가릉으로 여겨지는 것이 맞다.

2.2. 진평왕릉설

다른 의견으로는( 이근직 전 경주대 교수의 견해) 황복사 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진평왕의 능 진평왕릉이 위치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 진평왕릉이라 전하는 능이 신문왕의 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5] #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27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27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1] 예를 들면 여기서 가까운 선덕여왕릉과 비교해 봐도 그렇다. [2] 이근직 교수는 현재 효소왕릉으로 알려진,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성덕왕릉 옆의 대형 고분은 실제로는 효소왕이 묻힌 것이 아니라 어느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하였다. [3] 남산이 아니며 산이 맞다. [4] 왕릉의 둘레를 이루는 호석만 발견되었다. [5] 사실 이건 신문왕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라왕릉 중 능 주인이 정확히 확인되는 왕릉은 몇 기 안 된다. 능의 주인이 비교적 정확하게 밝혀진 건 위치상 거의 확실해 보이는 선덕여왕릉이나, 신라 당시 왕릉비의 일부가 발견된 무열왕릉 흥덕왕릉 등이 있다. 그 외에 원성왕릉, 성덕왕릉 헌덕왕릉도 실제 그 왕의 능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는 편. 그 외 대부분의 신라 왕릉은 '전(傳) ~왕릉'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