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1-22 02:18:31

시용무보

파일:시용무보.jpg

1. 개요2. 편찬시기 논란3. 내용4. 기타5. 외부 링크

1. 개요

時用舞譜. 조선 세조 재위 시기에 왕의 명으로 종묘제례악의 연주 순서와 춤의 모습을 실제 동작의 형태에 따라 그림과 문자로 기록하여 남긴 무보. 현재 국립국악원에 소장되어 있다.

2. 편찬시기 논란

시용무보는 발견된 이래 2종류의 연대추정설이 제시되어 왔다. 먼저 책에 수록된 내용을 보았을 때 세조가 종묘제례악을 처음 창시한 후 이를 교습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임은 분명하다.

첫번째는 세조 대로부터 1626년( 인조 4년) 또는 대악후보(大樂後譜) 편찬 이전에 만들어진 무보라는 설이다. 1626년(인조 4년)에 보태평 중 용광과 정명의 두 악장을 합치고 선조가 지은 중광장(重光章)을 용광정명 다음에 넣었고, 1769년(영조 45년)에 편찬한 대악후보(大樂後譜)에는 용광과 정명이 용광정명으로 합장(合章)된 데 비하여 시용무보에서는 용광과 정명이 분장(分章)되고 중광(重光)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즉 세조가 종묘제례악을 창시한 이후 길게 보면 1769년, 짧게 보면 1626년 이전에 만들어진 책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아예 종묘제례악을 처음 만들었던 세조 당대에 만들어진 책이라는 설이다. 세조실록악보, 대악후보, 속악원보(俗樂源譜)와 비교한 결과 세조실록악보와 강(綱), 행법(行法) 등이 완전히 일치하므로 1463년(세조 9)에 만들어진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 세조의 명으로 그의 재위 시기에 만들어진 책임이 거의 확실시되어가는 분위기다. 논문 : 『 시용무보 』 의 편찬연대와 『 시용무보 』 속에 나타난 술어 구성체제의 특징

3. 내용

세조가 처음 창안한 종묘제향(宗廟祭享)의 일무와 춤사위 및 각 부위의 움직임, 공간 이동과 방향, 반주음악 등을 문자, 도상, 기호, 그림을 사용하여 표기하고 독자들이 책을 보고 이를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일종의 교본이다.

시용보태평지무(時用保太平之舞)의 희문(熙文), 기명(基命), 귀인, 형가(亨嘉), 집녕(輯寧), 융화(隆化), 현미(顯美), 용광(龍光), 정명(貞明), 대유(大猷), 역성(繹成), 그리고 시용정대업지무(時用定大業之舞)의 독경(篤慶), 탁정(濯征), 선위(宣威), 신정(神定), 분웅(奮雄), 순응(順應), 총유(寵綏), 정세(靖世), 혁정(赫整) 연주 때 무대에 오른 한국의 고전 춤사위들을 하나하나 그림과 문자를 통해 세세히 기록해 남겼다. 총 그림 수는 666개로, 문무(文舞) 306개, 무무(武舞) 360개의 동작을 그려놓았다. 그 외에 당시 무용수들이 사용한 일무의 복식과 무구 또한 자세히 그려져 있다.

현재 한국에서 고전 무용의 실체를 그 당대에 그림과 악보로 자세히 설명해놓은 것은 오직 이 시용무보 하나 뿐이다. 특히 수백여년 전 고대 무용의 형태를 수백여점의 그림을 통해 동작 하나하나마다 세세히 표현한 책은 전세계적으로도 이 책이 유일하며 그야말로 한국의 전통문화사상 일대 보배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조선 말기인 고종대에 만들어진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忽記), 근현대에 만들어진 조선민족무용기본(朝鮮民族舞踊基本)과 함께 우리나라 고전 3대 무보로 불리며, 문자를 주로 사용하여 춤의 진행을 글로 풀어 설명한 두 책과 달리 춤의 동작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상세히 묘사하였기 때문에 무보로서의 완성도는 오히려 수백여년 뒤에 만들어진 두 무보보다도 더 높다고 평가받는다.

4. 기타

시용무보가 발견된 후 그 내용을 토대로 현재의 종묘제례악이 일제에 의해 왜곡된 것 같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 : ˝일제,종묘제례악 가사 왜곡˝

'시용무보의 무절 구조분석과 현행 종묘일무의 비교연구'를 통해 세조 당시에는 ‘황(皇), 성(聖), 종(宗), 용(龍)’ 등으로 묘사하던 임금이 '아조(我祖)’로 격하됐고 일본을 도이(‘섬 오랑캐’라는 뜻)라고 불렀던 부분도 사라지는 등 내용과 형식이 많이 바뀌었으며, 복식도 종묘 전용 국가제례복식에서 일반 연회복식(잔치를 열 때 입는 옷)으로, 춤도구인 ‘검’도 일반 군사용 제사에 쓰이는 ‘검’으로 바뀌는 등 전체적인 제례의 격식이 낮춰졌다고 말하고 있다.

해당 내용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기능보유자 김용이 발간한 '극일을 위한 김용의 종묘제례 일무보 『시용무보』의 원리와 실제'에 나와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4678427
2006년 문화재청은 KBS뉴스 전화인터뷰에서 복원 계획을 잡고 있다고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복원이 되지 않고 있으며 유네스코에는 여전히 잘못된 종묘제례악이 등재되어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824647

5.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