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30 22:33:27

승호군

{{{#!wiki style="margin:-12px -0px" <tablebordercolor=#e40001>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wiki style="margin: -16px -11px;"
도인민위
사리원시
송림시 }}}
곡산군 금천군 린산군 봉산군 상원군
서흥군 수안군 승호군 신계군 신평군
연산군 연탄군 은파군 중화군 토산군
평산군 황주군 장단군
}}}}}}}}}

파일:북한 국기.svg 황해북도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ffff> 승호군
勝湖郡
Sŭngho County
}}}
군 소재지 승호읍
지역 해서
면적
행정구역 1읍 3로동자구 9리
시간대 UTC+9
인구
인구밀도
군당위원장 파일:wpk.jpg 미상
인민위원장 파일:wpk.jpg 미상


1. 개요2. 역사3. 하위 행정구역4. 승호 수용소5. 유적
5.1. 만달리 유적

[clearfix]

1. 개요

북한 황해북도에 위치한 군.

2. 역사

본래 평양시 승호구역이었다. 분단 이전에는 평안남도 강동군 승호읍이었으며, 이후 북한이 1952년 행정구역 개편을 할 때 강동군의 승호읍 등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승호군을 신설하였다. 1959년에 중화군 일부 지역과 합하여 평양시에 편입되어 평양시 승호구역이 되었다.

평양시의 관할 면적을 줄이면서 평양시로부터 쫓겨나 황해북도에 편입되면서 군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2010년 5월 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한 황해북도 승호군 리천리에서 신석기 유적 발굴 보도로 승호군으로 변경이 확인되었다.

대동강에서 분리되는 남강이 승호군의 중심을 지나가며, 하중도를 하나 갖고 있다.

3. 하위 행정구역

2016년 3월 기준 총 1읍 3로동자구 9리로 구성되며 군소재지는 승호읍이다. 승호군으이 재설치되면서 립석동이 승호읍이 되었고 승호1동과 승호2동이 로동자구로 개편되었으며, 화천1동과 화천2동이 화천리로 합쳐졌고 나머지 동은 리가 되었다. 2016년 3월 조선행정구역도에서 화천리가 화천로동자구로 승격됨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북한 매체에서 '승호1로동자구', '만달협동농장'이라는 표기를 쓰기도 하였다. #
  • 읍 : 승호읍(勝湖邑)
  • 로동자구 : 승호1로동자구(勝湖1勞動者區), 승호2로동자구(勝湖2勞動者區), 화천로동자구(貨泉勞動者區)
  • 리 : 남강리(南江里), 독골리, 앞새리, 광정리(廣貞里), 금옥리(金玉里), 만달리(晚達里), 봉도리(鳳島里), 삼청리(三靑里), 리천리(梨川里)

아래는 평양시 승호구역 시절 행정구역이다. 총 8동 6리로 구성되었다.
동: 남강동(南江洞), 독골동, 립석동(立石洞), 승호일동(勝湖1洞), 승호이동(勝湖2洞), 앞새동, 화천일동(貨泉1洞), 화천이동(貨泉2洞)
리: 광정리(廣貞里), 금옥리(金玉里), 리천리(梨川里), 만달리(晚達里), 봉도리(鳳島里), 삼청리(三靑里)

4. 승호 수용소

대한민국이나 전 세계에 북한의 매우 잘 알려진 행정구역 중 하나다. 북한 최악의 정치범수용소였던 승호 수용소 때문이다. 이 승호 수용소는 당시 평양시 내에 있었으며, 요덕 제15호 관리소투톱을 달리는 정치범수용소였다. 승호 수용소는 1991년 국제 앰네스티의 정치범수용소 폭로로 인해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에 의해 전격 폐지되었다.

5. 유적

5.1. 만달리 유적

🪨 한반도 선사 유적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구석기시대 상원 검은모루동굴유적, 덕천 승리산동굴 유적[1], 만달리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2], 공주 석장리 유적[3], 두루봉동굴 유적,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신석기시대 서울 암사동 유적, 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주 천전리 암각화 ),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청동기시대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 강화 부근리 지석묘 ), 대구 진천동 입석, 사월동지석묘군, 속초 조양동 유적,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유적
기타 패총 유적 목록
※ 문서가 있는 경우만 서술.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문서에 나오듯 산 이름이 우상화 지명이라서 통일 후 개명 가능성이 높다. [2] 사적 지정, 학설을 뒤집은 유적 [3] 남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이며 한강 이남에도 구석기 문화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

만달리에 있는 1979년 10월과 1980년 5∼8월 사이에 발굴된 석회암 동굴 유적. 잘 알려진 구석기 유적으로서 '만달인(만달사람)'으로 칭해진 인류 화석이 발견되었다. 또한 눌러떼기 기법을 이용하여 보다 진일보한 석기들이 출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