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4 12:43:08

스티브 시드웰

스티브 시드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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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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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축구인
파일:Sidwell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스티브 시드웰
Steve Sidwell
본명 스티브 제임스 시드웰
Steve James Sidwell
출생 1982년 12월 14일 ([age(1982-12-14)]세)
잉글랜드 런던 원즈워스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코치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아스날 FC (1997~2001 / 유스)
아스날 FC (2001~2003)
브렌트포드 FC (2001~2002 / 임대)
KSK 베베런 (2002 / 임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02~2003 / 임대)
레딩 FC (2003~2007)

첼시 FC (2007~2008)
아스톤 빌라 FC (2008~2011)
풀럼 FC (2011~2014)
스토크 시티 FC (2014~2016)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6 / 임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6~2018)
지도자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8~2021 / 유스 코치)[1]
기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8~2021 / 앰버서더)[2]

1. 개요2. 클럽 경력3. 은퇴 이후4. 국가대표 경력5. 출전 기록6. 수상
6.1. 대회 기록6.2. 개인
7. 플레이 스타일8. 여담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축구코치.

현역시절, 2006-07시즌 레딩 돌풍의 주역이자 첼시, 빌라, 풀럼등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저니맨의 행보를 보인 동시에 프리미어 리그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했던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2.1. 레딩 FC

파일:VVAA.jpg

2003년 1월, 시드웰은 4년 반의 계약을 맺으며 레딩으로 완전 이적했다.

입단 이후 줄 곧 레딩의 중원에서 주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성장했다.

2004/05 시즌에 시드웰은 47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넣었고, 팀 중원에서 맹활약을 선보였다.
레딩은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며 리그 7위로 마감했다. FourFourTwo Magazine은 그를 프리미어 리그 외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으며[3], 그는 PFA 올해의 챔피언쉽 팀에 선정되면서 매우 좋은 시즌을 보냈다.

2005/06 시즌에도 변함없이 맹활약했는데, 레딩 FC 팬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시즌을 선물했다.
레딩은 승점 106점[4]으로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 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진출권을 확보한 시즌이다. 당시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2-1로 꺾은 후, 2위 셰필드 유나이티드 FC를 승점 14점 차로 따돌리는데 성공하는 등 리그 46경기 중 단 2경기만을 패배하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시드웰은 40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고, 제임스 하퍼와 함께 중원에서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 시즌의 활약으로 PFA 올해의 챔피언십 팀에 다시 한번 선정되었다.[5]

2006/07 첫 프리미어리그 시즌이였음에도 레딩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시드웰은 총 37경기에 출전하여 4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레딩의 리그 순위 8위를 견인했으나, 아깝게도 UEFA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가까스로 놓쳤다. 시즌 종료후엔 레딩과의 재계약을 거절하면서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빅클럽으로 가기 위해서 시드웰은 맨유, 첼시 FC, 토트넘 등 여러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클럽과 연결되었다.[6] 이렇게 시드웰은 레딩에서 최고의 나날들을 보낸 이후 팀을 떠났다.

시드웰은 레딩에서 5시즌간 활약하면서 168경기 29골을 기록하였고, 팀의 중원에서 핵심적인 선수로 맹활약하면서 팀의 승격을 이끄는데도 큰 공헌을 했다. 승격 이후에도 팀의 돌풍을 이끌면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시드웰이 떠난 이후에도 레딩 구단과 팬들은 시드웰을 팀 레전드로 꼽고 있으며, 본인 커리어 역사상 가장 많은 시즌, 가장 많은 경기,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 등 주요 전성기를 보낸 팀이기도 하다.

2.2. 첼시 FC

2.2.1. 빅클럽 입성

2007/08 시즌 전 시즌 준우승팀 첼시 FC로 이적하였다.

여러 클럽들에게 관심을 받던 시드웰을 영입하기 위해 첼시 감독이었던 조세 무리뉴가 본인 집에 초대하며 본인의 계획과 첼시와 계약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결국 자유계약으로 첼시에 입성했다. [7] 보통 스트라이커들이 배정받는 등번호 9번을 받았다. 그런데 무리뉴 감독이 시즌 시작 한달만에 로만 구단주와의 불화로 경질당했을 때 '누군가가 죽었다'고 느꼈다고 했다.[8]

시즌 총 25경기에 출전하여 1득점 1도움을 기록했다.

2.2.2. 실패한 영입?

여러 축구 커뮤니티, 국내 기사에선 첼시의 망한 영입 리스트에 시드웰이 포함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9][10][11], 이는 07/08 시즌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 출장경기 수, 스탯으로만 판단한 결과이다.

먼저 시드웰은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은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선수이다. 보통의 자유계약 선수들이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아 선수 개인이 받는 연봉이 높은 케이스가 많은데, 시드웰은 연봉조차 높은 편이 아니었다. 후보에 불과한 시드웰 선수의 연봉이 무려 22억원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첼시라는 클럽에서 22억원이라는 연봉은 결코 큰 금액이 아니다. 2군 선수였던 루카스 피아존이 13억원, 조쉬 매키크런이 25억원, 가엘 카쿠타가 36억원이었다.[12] 오히려 자유계약으로 영입된 1군 로스터 등록선수가 22억원인건 상당히 경제적이다. 빅클럽 써드 키퍼와 비슷하거나 적은 연봉이다.

그 다음 첼시 07/08 시즌의 특수성에 관한 문제이다. 그 어떤 국내기사나 블로그에선 이 배경지식이 없어 실패한 영입이라 서술하는 것이다. 바로 2008년 초에 열렸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다. 시즌 도중 열리는 아프리카 대륙 국제 대회 때문에 비교적 아프리카 선수들이 많은 프랑스와 잉글랜드 구단들은 대회가 열리는 시즌에는 스쿼드 보강을 확실하게 한다. 특히 한 시즌에 50경기 이상 소화하는 첼시라는 클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리뉴도 클럽이 시드웰을 영입하기로 결정한 계기가 마이클 에시엔 존 오비 미켈이 2008년 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각자의 국가에서 뛰게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13]

무엇보다 출전했던 경기에서 부진하지도 않았다. 물론 첼시가 전 시즌 리그 준우승에 컵 대회 2관왕을 기록하고 07/08 시즌도 총 7패만 기록할 만큼 강팀인 것도 이유겠지만 시드웰이 출전했을 때 단 한 경기도 패배하지 않았다.[14]

선수 본인으로선 미하엘 발락, 프랭크 램파드, 마이클 에시앙, 클로드 마켈렐레, 존 오비 미켈, 조 콜에 밀려 주전경쟁에 실패한 시즌일지 몰라도 첼시 구단 입장에선 실패한 영입이 아니다. 오히려 목적에 알맞는 영입이자 백업 미드필더라는 기대치에 걸맞은 활약이었다.

2.3. 아스톤 빌라

2008/09 시즌이 시작하기 전 2008년 7월 10일, 시드웰은 500만 파운드(약 80억 원) 정도로 추정되는 비공개 이적료로 아스톤 빌라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15] 클럽 데뷔전은 FC 취리히와의 프리시즌 경기였고 팀은 1-2로 패했다. UEFA 인터토토 컵에서 오덴세 BK와의 공식데뷔전에서 자책골을 넣었고 팀은 2-2로 비겼다. 이후 유럽 진출을 위한 2차전에서 1-0으로 승리했지만 시드웰은 종아리 부상을 입었다. 결국 10월 26일 위건 애슬레틱을 상대로 교체로 출전해 빌라 소속으로 첫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치렀고, 원정 경기에서 득점했다. 11월 9일 시드웰은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지만 말도 안되는 자책성 백패스로 빌라가 2-1로 패했다. 12월 7일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단 34초 만에 시즌 세 번째 골을 기록했고 빌라는 3-2로 승리했다. 2009년 2월 26일 CSKA 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출전할 수 없었다. 아스톤 빌라는 리그 6위를 기록했고 시드웰은 시즌 총 25경기를 뛰며 4골을 넣었다.

2009/10 시즌은 SK 라피트 빈에 의해 유럽 대항전에서 탈락하면서 암울하게 출발 했지만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3-1 로 꺾으며 리그는 순조롭게 출발했다. 팀의 주축 미드필더였던 가레스 배리 맨체스터 시티로 떠남에 따라 더 많은 출전기회를 부여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스튜어트 다우닝이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왼쪽 윙에서 뛰던 제임스 밀너가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옮겼고 마틴 오닐 감독은 4-4-2 전술에서 중앙 미드필더 조합을 제임스 밀너 - 스틸리얀 페트로프로 구성했고 13R 번리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아스톤 빌라는 저번 시즌과 같이 리그 6위를 기록했고 시드웰은 시즌 33경기를 출전했지만 대부분은 교체선수로 나왔다.

이후 인터뷰에서 이 시절 아스톤 빌라 생활을 회상하며 부진의 원인에 대해 가족과 떨어져 살고있었고, 아들이 뇌수막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축구에 집중을 할 수 없어 감독인 마틴 오닐과 갈등이 있었다고 밝혔다.[16]

2010/11 시즌 시작 전 발렌시아와의 마지막 친선경기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다.[17] 부상에서 복귀하자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미드필더인 아들렌 게디오라의 다리를 부러트렸다.[18] 또 11월에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결장했다.

이후 겨울 이적시장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에 가까웠지만 프리미어 리그의 25인 스쿼드 규칙을 위반하여 이적이 취소되었다.[19] 이후 울버햄튼 믹 맥카시 감독이 시드웰을 데려오려 협상을 했지만 결국 가족들이 있는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09/10 시즌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던 풀럼으로 이적한다.[20][21]

2.4. 풀럼 FC

2010/11 시즌 겨울, 시드웰은 2011년 1월 7일 풀럼과 3년 더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 있는 6개월 계약을 맺었다.[22] 1월 22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 풀럼 소속으로 데뷔전을 치르고 마크 휴즈 감독 신임하에 다시 주전으로 도약했다. 이후 하반기를 대니 머피와 호흡을 맞춰 이적 후 리그 16경기 중 7승 5무 4패를 달성하며 팀의 리그 8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풀럼은 UEFA 페어플레이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하여 UEFA 유로파리그 1차 예선전에 참가하게 되었다.[23]

4월 18일, 시드웰의 계약은 2014년 여름까지 연장되었다.[24] 시드웰은 리버풀 아스날 FC를 상대로 각각 한 골을 넣으며 2010-11 시즌을 끝냈다.

2011/12 시즌 시작 전 풀럼의 유로파리그 진출을 도왔던 마크 휴즈 감독이 사임하고 QPR로 떠나자 마틴 욜 감독이 부임했다.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고도 주전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시즌 초 부터 시드웰은 대니 머피와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11R까지 단 2승 밖에 거두지 못했다. 시드웰도 사타구니 부상을 당해 12월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2012년 1월 2일, 아스날 FC 전에서 후반 85분 헤딩 동점골을 넣으며 팀의 2:1 역전승에 견인하여 복귀를 알렸지만[25] 2월 4일, 다시 사타구니 부상이 재발해 시즌 아웃되었다.[26] 팀은 후반기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브레데 한겔란트의 철벽모드와 리그에서 17골을 기록한 클린트 뎀프시의 하드캐리에 힘입어 리그 9위로 마무리했다.

2012/13 시즌, 팀의 주축 미드필더였던 대니 머피가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을 하고 시드웰은 이전 시즌까지 센터백, 풀백, 미드필더 전체를 땜빵하던 크리스 베어드와 중원을 이루게 됐다. 지난 시즌 당한 부상에서 회복해 리그 첫 경기 노리치 시티 전에서 교체로 투입되어 페널트킥을 성공시키며 리그 첫 골을 넣어 팀의 5-0 승리를 안겼다. 이후 웨스트 브롬위치, 에버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서 골을 기록했다. 2013년 4월 1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 아르망 트라오레에 대한 늦은 태클로 퇴장당하면서 3경기 출전 정지를 당했고[27] 징계가 풀린 아스날 FC전에서 경기시작 12분만에 미켈 아르테타에 돌진을 하면서 또 퇴장을 당해 다시 4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으며 시즌을 마쳤다.[28] 시즌 총 31경기에 출장하여 4골 2어시를 기록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부상없이 풀리그를 소화했고 수비적인 기여도가 상당히 두드러진 시즌이었다.[29] 팀은 베르바토프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 12위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시즌 종료 후 시드웰은 영입이 많았던 과도기적인 시즌이었다고 구단에 지적했다.[30]

2013/14 시즌은 팀은 강등당했지만 선수 본인에겐 커리어 하이였던 시즌이었다. 시즌 전 부터 시드웰은 토트넘에서 영입된 스콧 파커와 중원을 이루며 좋은 시너지를 낼거라 기대를 했지만 풀럼은 13R까지 3승 1무 9패를 기록했으며 마틴 욜 감독은 경질되었다. 전 맨유 코치였던 르네 뮬레스틴이 새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시기에 시드웰은 리그 4골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했으나 역시 2014년 2월에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왔으나 5월 3일, 스토크 시티에 4-1로 패한 후 리그 19위로 챔피언쉽 강등이 확정되었다. 강등 이후 시드웰은 그의 팀의 성과를 비판했다.[31] 5월 23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났다.[32]

시드웰은 시즌 43경기 중 41경기를 선발로 출전했고 8골 2어시를 기록했다. 대런 벤트, 우고 로다예가, 베르바토프 등 공격진의 부진에 힘입어 시드웰은 풀럼의 최다득점자로 기록되었다. 겨울이적시장에 들어와 공격진에서 유일하게 사람 역할을 한 홀트비 다음으로 팀내 평점 2위를 기록했으며[33] 제이미 레드냅은 시드웰이 풀럼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선수라고 말했다[34], MOM도 총 6회 선정이 됐는데 이것은 루이스 수아레즈, 웨인 루니에 이은 리그 공동 3위 기록이다.[35] 또 수비적인 기여도도 경기당 태클 3회이상, 가로채기 2회상 이 수치는 풀럼의 그 어떤 선수들보다 많은 기록이고 또 리그 내 동 포지션 선수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36] 한겔란트가 없는 동안 팀에서 주장역할을 잠시 맡기도 했다. 이렇게 활약을 했는데도 풀럼 올해의 선수상은 이란 출신의 윙어 아슈칸 데자가가 차지했다. [37][38]

풀럼에서 총 114경기를 출전해 17골 8어시를 기록했다. 특히 선수생활 내내 부상을 달고 다녔는데 마지막 두 시즌은 부상없이 풀 시즌을 소화했고 레딩시절을 뛰어넘는 선수 본인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팀이 강등당해 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했다.

2.5. 스토크 시티 FC

2014/15 시즌, 풀럼 시절 은사였던 마크 휴즈 감독이 있는 스토크 시티로 자유계약으로 합류했다. 시즌 초반 아일랜드 국가대표 글렌 휠런, 프랑스 청소년 대표 스티븐 은존지,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찰리 아담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리다 기회를 받아 2014년 8월 24일 헐 시티 와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스토크 소속으로 데뷔했다. 클럽에서 첫 두 달 동안 단 한 번의 선발기회를 가진 후, 주전 경쟁이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39]12월 1일, 시드웰은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무릎 인대가 파열 되어 남은 시즌 대부분을 부상과 벤치에서 끝냈다.[40] 시즌 총 16경기를 출전했고 선발은 단 6경기이다.

2.6.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5/16 시즌, 스토크에서 전력외로 선수로 분류되어 대부분의 경기에서 벤치에도 앉지못하며 주전경쟁이 힘들다는 걸 시인했다.[41]. 이후 겨울이적시장에서 임대로 챔피언쉽 소속이자 자신의 프로 첫 데뷔팀이었던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으로 합류한다.[42]

2016년 4월 11일, 노팅엄 포레스트전에서 복귀골을 터트리며 팀의 2-1 승리를 도왔다. 합류 후 출장했던 리그 16경기 중 1골 1어시를 하고 팀은 단 1패만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도왔으나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셰필드 웬즈데이에 패배하며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 좌절되었다.

2016/17 시즌,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으로 1년 계약을 체결하며 완전이적하였다. 리스 휴튼 감독은 "그는 챔피언십이 무엇인지, 승격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43] 2016년 11월 5일, 브리스톨 시티와의 경기에서 50야드 장거리 슛을 득점했다. 이 골은 EFL Awards : Goal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44]


팀의 베테랑 미드필더로 수비적인 부분에 많은 기여를 했고 뉴캐슬과 승점 1점 차이로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2로 리그를 마치며 팀의 프리미어리그 자동승격을 도왔고 이는 팀의 34년만의 프리미어리그 복귀였다.[45]


2017/18 시즌, 1년 연장 재계약을 체결했지만[46] 발목 부상으로 통으로 결장한 후 2018년 8월 선수은퇴를 선언했다.[47]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 팀의 엠버서더로 임명되고 16세 이하 청소년 코치로 첫 스탭 커리어를 시작했다. 또한 종종 Sky Sports에 패널로 출연하며 축구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4. 국가대표 경력

2001년 U20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소집되었다. 이후 2003년 U21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데뷔한 후 총 5경기에 출장했다.

5. 출전 기록

클럽 시즌 소속리그 리그 컵대회 대륙대회 총합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02/03 챔피언쉽 12 5 0 0 0 0 0 0 0 25 7 0
레딩 FC 13 2 0 1 0 0 0 0 0
2003/04 챔피언쉽 43 8 3 4 0 0 0 0 0 47 8 3
2004/05 챔피언쉽 44 5 3 2 0 1 0 0 0 46 5 4
2005/06 챔피언쉽 33 10 0 4 0 0 0 0 0 37 10 0
2006/07 프리미어 리그 35 4 3 2 0 0 0 0 0 37 4 3
첼시 FC 2007/08 프리미어 리그 15 0 1 6 1 0 1 0 0 25 1 1
아스톤 빌라 2008/09 프리미어 리그 16 3 0 4 1 1 5 0 1 25 4 2
2009/10 프리미어 리그 25 0 2 7 0 0 1 0 0 33 0 2
2010/11 프리미어 리그 4 0 0 2 0 0 0 0 0 20 2 2
풀럼 FC 프리미어 리그 12 2 2 2 0 0 0 0 0
2011/12 프리미어 리그 14 1 1 3 0 0 11 2 1 28 3 2
2012/13 프리미어 리그 28 4 2 3 0 0 0 0 0 31 4 2
2013/14 프리미어 리그 38 7 2 3 1 0 0 0 0 42 8 2
스토크 시티 2014/15 프리미어 리그 12 0 0 4 0 0 0 0 0 16 0 0
2015/16 프리미어 리그 1 0 0 3 0 0 0 0 0 22 1 1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챔피언쉽 16 1 1 2 0 0 0 0 0
2016/17 챔피언쉽 34 1 0 3 0 0 0 0 0 37 1 0
2017/18 프리미어 리그 0 0 0 0 0 0 0 0 0 0 0 0
총합 395 53 20 57 3 2 18 2 1 470 58 24

6. 수상

6.1. 대회 기록

  • 아스날 FC (1997~2001 / 유스)
    • FA 유스 컵: 1999-00, 2000-01

6.2. 개인

7. 플레이 스타일

창의성을 제거 한 마크 노블[48]이자 완성되지 않은 스콧 파커.[49]

풀럼 시절 전형적인 잉글랜드산 볼위닝 미드필더를 보여주며 인터셉트, 블록킹, 태클에 대한 능력은 항상 리그 상위권 수준으로 평가 받았고 기록한 스탯만 보아도 손가락에 드는 수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50][51] 세컨볼 경합과정에서 슬라이딩 태클을 즐겨하는 스타일 때문에 카드를 자주 수집한다.

8. 여담

  • 2005년 6월 19일에 Krystell과 결혼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그는 그녀를 위해 작성한 결혼 서약의 문신을 등에 새겼다.
  • 아스날을 떠날 때 다시 아스날 셔츠를 입겠다 다짐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52]
  • 아스날 FC 유스출신답게 패트릭 비에이라가 롤모델이었고[53], 로이 킨, 브라이언 롭슨도 동경했다.[54]
  • 어렸을 때는 이안 라이트를 동경해 크리스탈 팰리스 서포터였지만[55] 아스날에서 유소년 축구를 시작한 후 아스날 서포터가 되었다.
  • 2018년 8월 선수은퇴 후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앰버서더가 되었다.[56]
  • 은퇴 후 Sky Sports에서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 선수시절 아들 해리 시드웰의 골 기록을 쫓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 아들은 6살이었다. [57]
  • 스토크 시티에서 브라이튼으로의 이적은 브라이튼 역사상 최고의 겨울시장이적 9위에 랭크되었다.[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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