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Степан Фёдорович Апраксин러시아 제국의 장군. 7년 전쟁 초기 러시아 제국군을 이끌고 동프로이센을 침공했으나 도중에 철수했다가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의 분노를 사 죽음을 면치 못했다.
2. 생애
1702년 8월 10일에 태어났다. 16살에 프레브라젠스키 친위대[1]에 입단했고, 뮈니히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1736년부터 1739년까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복무했다. 그는 외지[2] 요새 공략전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1739년 호틴 공략에 크게 기여해 소장으로 진급했다. 1742년, 아프락신은 알렉산드르 넵스키 훈장을 수여받았고 페르시아의 러시아 대사로 파견되었다.아프락신은 러시아 궁정 내에서 대표적인 반프로이센 인사였고, 그런 그의 성향을 고려한 옐리자베타 여제는 1756년 9월 20일 아프락신을 프로이센 침공에 투입될 러시아군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1757년 5월 아프락신은 동프로이센을 전격 침공했고 8월 30일 아프락신의 러시아군은 메멜 강을 건너던 중 한스 폰 레발트 장군 휘하 프로이센군 2만 5천명의 습격을 받아 크게 고전했으나 수적인 우세를 활용해 적을 격퇴했는데 이것이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다. 그러나 아프락신은 공세를 중단하고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9월 13일 러시아로 철수했다. 그가 철수를 택한 경위에 대해서는 황태자 표트르의 친프로이센 성향을 고려했다는 설, 천연두가 창궐해 병사들이 고통을 겪어서 더이상 공세를 이어가기 힘들었다는 설, 영국에게 매수된 러시아 재상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베스투제프가 압력을 가했다는 설 등 온갖 설이 제기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옐리자베타 여제는 이런 아프락신에게 격노해 10월 28일 사령관 직을 박탈하고 빌림 빌리모비치 페르모르를 새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옐라베타 여제는 아프락신이 동프로이센에서 철수한 까닭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게 했고, 아프락신은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다가 1758년 8월 17일 옥사했다.
그의 외아들 스테판 스테파노비치 아프락신(1757~1827)은 훗날 예카테리나 2세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탁월한 활약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