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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9><colcolor=#fff> 오릭스 버팔로즈 No.99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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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모토 유타로 杉本裕太郎 | Sugimoto Yuta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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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91년 4월 5일 ([age(1991-04-05)]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도쿠시마현 아난시 |
출신교 | 도쿠시마 상업 고교 - 아오야마가쿠인대학 |
신체 | 190cm, 105kg |
포지션 | 1루수[1],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15년 드래프트 10순위[2][3] |
소속팀 | 오릭스 버팔로즈 (2016~) |
[clearfix]
1. 개요
오릭스 버팔로즈 소속의 외야수. 대졸 사회인+10라운드 지명+오랜 무명 생활 등을 버티고[4], 뒤늦게 리그 최고의 파워히터로 거듭난 대기만성형 선수.2.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부 소속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도쿠시마현 대회 우승과 시코쿠 대회 4강 진출에 공헌했다.도쿠시마현 상업고등학교 진학 후 1학년 여름 도쿠시마 대회에 투수로서 등판했다. 팀이 전국 대회에 진출을 결정짓고 벤치 멤버에 들어갔지만 고시엔에서 등판 기회는 없었다. 2학년 여름에 마무리 투수를 맡았고 가을에 에이스로 정착했다. 그러나 전국 대회 출장은 1학년 여름이 마지막이었다.
고교 졸업 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 진학했다. 투수로서 소질을 인정받았지만 본인의 희망에 의해서 입학하자마자 외야수로 전향했다. 1학년 가을 리그부터 지명타자로 기용되었다. 4번 타자로 정착한 2학년 가을 리그에서는 리그 역사상 19년 만의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고 베스트나인도 수상했다. 3학년 이후에 2년 후배인 3번 타자 요시다 마사타카와 콤비를 이루며 백투백 홈런을 3번이나 기록했다. 4학년 가을 리그에서 코마자와대학의 이마나가 쇼타로부터 2연타석 홈런을 쳤다. 대학 1부 리그 통산 성적은 83경기 309타수 81안타 타율 .262 9홈런 32타점이었다.[5]
대학 졸업 후 JR 서일본에 입사하여 입사 1년 차부터 공식전에 출장했다. JABA 히로시마 대회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 팀을 상대로 특대 홈런을 치기도 했다. 근무할 때는 히로시마 지사 수송과 소속으로 서류 분쇄나 커피시럽 심부름 등의 잡무가 주요 업무였다.[6] 이때 돈을 버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2015년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오릭스 버팔로즈로부터 10순위로 지명되었다. 그가 지명된 순서는 지배하 선수로 지명된 88명 중에 87명째였다.[7] 계약금 2,000만 엔, 연봉 600만 엔 조건으로 입단했다. 등번호는 99. 대학 시절 동료였던 요시다 마사타카와 다시 팀 동료가 되었다.[8]
3. 프로 입단 후
3.1. 2016년
입단 동기인 오시로 코지, 스즈키 코헤이와 함께 스프링캠프를 1군에서 맞이해 시즌 중간까지 1군에 대동했다. 6월 14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1번 타자 중견수로 1군 경기에 데뷔했지만 무안타로 물러났다.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또 아팠던 오른쪽 팔꿈치 상태가 악화되어 말소 후 8월 10일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3.2. 2017년
2년 연속으로 스프링캠프를 1군에서 맞이했지만 공식전은 2군에서 시작했다. 7월 13일 2군 올스타 게임에서 웨스턴 리그 6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9월 초까지 2군 성적은 80경기 타율 .250 8홈런 35타점이었다. 9월 9일 1군에 등록되어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다. 1회초에 카라시마 와타루 상대로 백스크린 직격 홈런을 쳤다. 1군 경기 첫 안타였다. 다음날 1점 뒤진 9회 초 2아웃 2루 상황에서 대타로 기용되었지만 3구 삼진으로 물러나며 경기가 끝났다. 불과 2일 만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시즌 성적은 9경기 타율 .118에 불과했다.3.3. 2018년
3년 연속으로 스프링캠프를 1군에서 맞이했지만 막판 홍백전에서 사인 미스를 범해 2군으로 강등되었다. 2군 리그 개막부터 7월 초까지 홈런이 나오지 않았고 타율이 2할을 겨우 넘길 정도로 부진에 허덕였다. 7월 11일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어 라쿠텐 전에서 7번 타자 우익수로 출장했다. 4회 초 1아웃 만루 상황에서 맞이한 두 번째 타석에서 카라시마 와타루 상대로 1군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7월 1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도 3회 말 1아웃 만루 상황에 타마이 타이쇼 상대로 2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7경기에 출장해 3안타 8타점을 기록했다.3.4. 2019년
스프링캠프부터 시범경기까지 1군에 대동했다.개막 1군 로스터 진입은 놓쳤지만 2군 리그 9경기에서 타율 .313 4홈런을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여 4월 10일부터 1군에 복귀했다. 4월 13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1군 공식전 첫 4번 타자로 기용되어 멀티 홈런을 때렸다. 4월 19일 닛폰햄전에서 시즌 3호 안타를 1군 공식전 첫 대타 홈런으로 기록했다. 20일 라쿠텐전에서 6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미마 마나부 상대로 1군 공식전 첫 단타를 쳤다.[9] 시즌 성적은 18경기 타율 .157 4홈런이었다.3.5. 2020년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다. 8월 21일, 전날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이 퇴임하여 1군 감독으로 승격된 나카지마 사토시 2군 감독에게서 "함께 가자."라는 말을 들으며 1군으로 승격되었다. 그 날 세이부전에서 선발 출장해 동점 적시타를 치는 활약을 보였다. 시즌 성적은 41경기 127타수 34안타 2홈런 타율 .268 출루율 .340 장타율 .354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3.6. 2021년
시즌 도중부터 4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포텐이 제대로 폭발하여 만년 유망주였던 선수가 10월 18일 기준 130경기 32홈런[10] 타율 .305 출루율 .384 장타율 .565를 기록하는 리그 최고 수준의 우익수로 환골탈태했다. 대학 시절처럼 요시다 마사타카와 3, 4번을 이루며 오릭스의 타선을 견인하고 있다. 결국 규정타석 3할에 32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홈런왕 중 지명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라고 한다. 이전 기록은 7라운더 출신인 카케후 마사유키.3.7. 2022년
작년 시즌은 플루크였는지 타격감이 살아나지 못하고있다. 이런 와중에 4월 9일 사사키 로키 퍼펙트 장면에서 경기를 끝내는 19번째 삼진을 당하며 허용타자로 박제되고 말았다. 4월 23일 기준 기어이 타율 9푼이를 달성했다. 이쯤되면 작년 성적이 플루크다.5월에 2군에 갔다 온 후론 다시 작년 페이스로 타격을 했고, 교류전에서는 타격왕을 차지했다. 작년만큼은 못 해도 후반기에만 이 페이스를 이어가면 팀내 4번 타자 자리를 되찾을듯.
교류전 수위타자 등극에 힘입어 상승세를 기록, 한때 9푼까지 곤두박질 쳤던 타율은 2할 5푼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타율은 계속 2할 4푼대에서 머무르고 있으나, 꾸준히 홈런과 장타를 생산하며 8월 13일 현재 15홈런으로 팀내 1위를 기록 중이며, 타율은 낮지만 득점권 타율은 3할2푼대에 육박하여 중심타자로서의 역할을 어느정도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8월 이후 또 다시 1할대로 성적이 하락하면서 선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늘어났고, 결국 최종적으론 규정타석에 10개 차로 미달하며 105시합 출장에 타율 .235/OPS .722 15홈런 51타점으로 작년보다 더 떨어진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1, 2차전 연속으로 결승점을 내는 활약으로 어느 정도 폼을 되찾았고, 뒤이은 일본시리즈에서도 전 경기에 선발로 출장해서 비록 홈런은 하나도 치지 못했지만 꾸준히 안타를 쳐낸 데 이어 4차전, 6차전의 결승타와 7차전 5회 2:0 만루 상황에서 주자들을 싹쓸이하는 3득점 실책 타구를[11] 쳐내는 활약으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3.8. 2023년
2022년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모습이 부활의 신호탄이었던 것인지 4월 한달 동안 8홈런을 치며 타율 .274 출루율 .351 장타율 .583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플루크였는지 5월 초 왼쪽 장딴지근 부상을 당했다가 복귀한 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컨택이 제대로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작년과 비슷한 96시합 출장, 타율 .242/OPS .723 16홈런에 그쳤다.그래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작년 일본시리즈 MVP 짬밥이 어디 안 간다는 듯이 타율 .429에 3타점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MVP를 수상했으나 4차전에서 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2023년 일본시리즈에서 결장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일본시리즈에선 작년과 달리 5~7차전만 출장해 8타수 1안타에 그쳤다. 그리고 7차전 9회말 2아웃에서 좌익수 뜬공을 날리며 한신의 38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를 결정짓는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3.9. 2024년
타율이 아예 2할 언저리로 떨어지며 플래툰 겸 대타 요원으로 완전히 추락해버렸다. 그래도 스즈키 쇼타의 ERA 0.00 행진을 깨는 역전 홈런을 치는 등 아주 활약이 없지는 않았다.사족으로 하필 2024년에 자서전을 내는 바람에 "이 타이밍에 자서전을 내냐?"는 반응도 있었다(...).
후반기에는 나름대로 성적을 끌어올리며 4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달성해냈다. OPS도 7할대로 올라오며 2021년급은 아니어도 1군에서 아직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키 190cm, 체중 105kg의 건장한 체격 덕분에 준수한 파워를 가진 타자로 평가받지만 선구안과 컨택이 매우 나빠서 그 툴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다.입단 후 4년간은 아예 써먹을 수가 없는 급이었고[12], 2021년에 갑자기 규정타석 3할에 홈런왕을 치면서 뒤늦게마자 강타자로 각성하나 싶었으나 다음 해부터 다시 컨택이 곤두박질치면서 플루크라는 것을 입증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예 못 써먹을 수준이었던 데뷔 초와는 달리 15홈런 내외는 쳐주면서 1군에서 써먹을 수준으로 나아지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선구안과 컨택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탓에 가진 파워를 다 못 쓰고 OPS 히터라고도 하기 힘든 아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5. 여담
- 북두의 권의 라오우의 광팬이다. 위 사진의 홈런 세레모니도 내 생애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를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 등장곡도 평상시에는 북두의 권 애니 1부 OP인 사랑을 되찾아라!!, 득점권 상황에서는 2부 OP인 TOUGH BOY를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팬들에게 아예 라오우라는 별명으로 정착했다. 때때로 라오우 코스프레를 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2023년 리그 우승 후 맥주 샤워[13] 회장에서도 라오우 차림으로 맥주를 뿌렸다.
- 2024년 자서전을 발매했다. 제목은 '僕がラオウになる日まで: ドラフト10位からの逆襲人生'(내가 라오우가 되는 날까지. 드래프트 10위로부터의 역습인생)이다.
[1]
원래 주포지션은 외야지만 2022시즌부터는 1루도 같이 병행한다.
[2]
전체 88명 중 87순위다.
[3]
일본은 한국과 달리 드래프트에서 평균 6~7라운드까지 지명한다. 즉 10라운더면 한국 기준으론 사실상 육성선수. 근데 심지어 대졸+사회인 출신이라 26살이란 걸 감안하면 데려갈 생각이 거의 없던 선수를 파워 하나만 보고 안고 죽어보자 하고 뽑았다는 것(...).
[4]
사실 무명생활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파워히터가 워낙 없는 오릭스가 아니었으면 100% 방출당해서 은퇴했단 말도 있었다(...). 다만 스기모토의 성공 이후 각 구단들이 파워히터 노망주들을 좀 더 오랫동안 기다려주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5]
다만 대학 시절부터 볼넷은 25개 정도 얻었는데 삼진은 70개를 넘길 정도로 공갈포였다. 실제로 OPS는 7할을 겨우 넘겼고.
[6]
사회인야구 기업팀 선수들이 전문적인 업무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저런 식의 보조적인 일 혹은 생산직으로 배치된다.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사회복무요원에게 전문적인 일을 못 시키기 때문에 어딜 가나 잡무 위주로 시키는 것과 비슷한 느낌.단 직장인 만큼
사회복무요원 꿀무지보단 헬무지에 가깝다
[7]
스기모토보다 지명이 늦은 88명째 선수는 마츠모토 나오아키라는 90년생 독립리그 투수였다. 이 선수는 세이부에 10라운더로 지명되었고 4년간 30경기에 등판해 승패없이 1홀드에 ERA 6.25를 기록하고 방출.27살에 입단 한 거라 4년 만에 잘려도 한국나이로 30대였다 이후 독립 리그로 갔다.
[8]
요시다 마사타카는 동년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버팔로즈에 1순위로 입단했다. 즉 요시다는 최상위 픽, 스기모토는 최하위 픽.
[9]
그 전까지 기록한 안타는 모두 장타였다.
[10]
퍼시픽 리그 1위
[11]
좌중간으로 향하는 깊은 뜬공을 쳐서
중견수
시오미 야스타카에게 잡힐 뻔했는데 시오미가 이 공을 놓치면서 주자들을 전원 들여보내게 되었다. 이후에 야쿠르트가 1점차로 따라붙었기 때문에 만약 이 실책이 아니었으면 야쿠르트의 역전승으로 시리즈가 8차전까지 갈 뻔했다.
[12]
거기다가 10순위 지명이라는 매우 낮은 지명순위까지 감안하면 파워히터가 워낙 부족한 오릭스 소속이라 붙들어 놨지, 다른 팀이었으면 금방 방출시켜도 할 말 없는 수준이었다.
[13]
원문으로는 ビールかけ. 일본에서는 우승하고 나서 별도의 장소를 잡고 맥주병 3000개를 뿌리면서 우승을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MLB, KBO에서도 우승 후 샴페인을 따고 뿌리는 샴페인 파티를 벌이는데 이것과 비슷하다. 만 19세인 해에 바로 삼페인을 뿌릴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법적으로 생일이 지난 만 20세부터 음주가 가능하다. 그래서 고졸 신인 선수는 물론, 2년차 선수여도 생일이 안 지나면 참여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