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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Biological Scie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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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Physic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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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Biology |
1. 개요
自 然 科 學, 理 學, 自 然 學 / Natural Science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일상에서 과학이라고 말할 때는 보통 이 자연과학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과학을 가장 좁은 의미로 사용할 때의 의미가 바로 자연과학이다. 최협의(最狹義)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사회과학과 함께 ' 경험과학'으로 분류되기도 하며, 다른 것으로는 농학, 공학, 의학 같은 응용과학, 수학이나 컴퓨터과학 같은 형식과학이 있다. 보통 자연과학을 사회과학 등을 제외한 좀더 작은 개념의 순수과학(Pure science)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식 한자어로는 이학(理學)이라고도 한다. 이공계, 이과대학[1]할 때 이(理)가 이 한자다.
2. 학문의 분류
2.1. 물상과학
자세한 내용은 물상과학 문서 참고하십시오.2.2. 생명과학
자세한 내용은 생명과학 문서 참고하십시오.2.3.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학문
3. 역사
3.1. 근세 이전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으로부터 자연과학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 시기의 자연과학은 독립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철학의 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스 과학을 대변하는 사람은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였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사상은 중세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편 아랍, 즉 이슬람의 과학은 중세 초기의 암흑기를 거쳐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의 과학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의 과학은 주로 그리스 과학을 번역 · 수용한 것이었기에 비록 독창적 성격은 부족했었지만 의학, 천문학, 대수학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대수학을 의미하는 ‘algebra’의 기원이 알콰리즈미(al-Khwarizmi)[4]가 사용한 용어 알 자브르(al-jabr)에서 유래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중세 초기의 과학은 암흑기였지만 11세기 이슬람에서 보존 · 발전된 그리스 과학이 다시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자연과학은 12세기부터 유럽에 등장한 대학의 교과과정에서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는데, 중세 대학에서 과학은 전공학문으로 존재하지 않고, 전공학문( 신학, 법학, 의학 등 3개 전공학문이 있었다)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수하는 교양학부에서 다루어졌다. 게다가 이때의 과학은 수론(數論, number theory),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이 전부였다. 중세 대학에서 학문의 주된 목적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한 것으로, 철학과 과학은 신학의 시녀 역할이었다.3.2. 근세
16 ~ 17세기에는 자연과학의 내용과 사회적 위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 이전의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학문으로서 변모하였던 것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서 시작하여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을 거쳐 아이작 뉴턴에 이르러 완성이 이루어진 새로운 천문학, 갈릴레오에서 시작하여 르네 데카르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를 거쳐 뉴턴에서 완성된 고전역학,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이래 축적된 해부학적 지식과 윌리엄 하비의 피의 순환 이론을 통해 학문의 모습을 갖춘 생리학, 데카르트, 피에르 드 페르마 등을 거쳐 뉴턴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가 완성한 미적분학의 탄생 등이 바로 그것이다.3.3. 근대
흔히 근대 자연과학이라고 할 때는 '아이작 뉴턴이 고전역학을 완성한 이후부터 19세기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 17세기 말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몇 가지의 운동 법칙 그리고 수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성공하였다. 뉴턴의 과학은 경험과 이론의 종합에 의한 완성품으로서, 이후의 자연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뉴턴이 추구한 방법론의 영향은 물리학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화학, 생물학 분야는 물론 심지어 사회과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서양 현대 과학사조의 기원인 계몽사조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뉴턴 과학이 독단이 아니라 수학적 · 합리적 · 경험적 · 실험적 방법만을 사용하여 성공했다는 점에서 학문의 ‘과학적’인 면을 존중하는 경향이 퍼졌고, 이는 18세기의 철학자, 사상가, 문인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편, 근대화학의 체계가 형성된 것도 이 시기였다. 고전물리학 탄생된 이후 100년 뒤, 프랑스 혁명기 전후 앙투앙 로랑 드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에 의하여 근대화학의 체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화학 연구의 내용은 물론 형태, 방법의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이전의 화학이 정성적 화학 중심이었다면 근대들어서는 정량 화학 중심으로 바뀌었다. 라부아지에는 ‘물질보존의 법칙’을 제시하였으며, 산화탄소, 황산 등과 같이 구성 성분이 나타나도록 화합물을 명명했을 뿐만 아니라, 화합물을 기호로 나타낸 후 대수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화학반응을 방정식으로 표현하였다. 18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과학은 사회적으로 시스템이 갖추어 지고 전문화되었으며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과 같은 학문 영역이 구분되기 시작하였으며, 전문 학술지와 학술단체, 전문 교육기관도 등장하였다. 또한 19세기 중반에는 에너지와 엔트로피 개념이 생겨나면서 열 분야의 지식이 과학화되어 물리학의 중요 분야 중 하나인 열역학(熱力學, thermodynamics)이 탄생하였다. 18세기만 해도 열에 대한 연구는 물리학이 아닌 화학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열역학이 형성되면서 기존의 역학 분야와 함께 빛, 전기, 자기, 소리, 기체 등을 연구하는 분야들이 각각 체계화 · 과학화되어 물리학이라는 과학 분야로 귀결되었다. 한편 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실험과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야 ‘생물학’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3.4. 현대
20세기 이후 자연과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하여 양자역학, 핵물리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등의 분야가 새로이 형성되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 새로운 분과 영역이 탄생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양자역학의 탄생은 매우 빛나는 업적인데, 보어의 원자모형과 고전양자론을 기반으로 한 행렬역학을 베르너 칼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가 발표하였고, 같은 시기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는 파동역학을 이용하여 양자역학의 체계를 만들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과 더불어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정립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상대성 이론은 19세기 고전역학과 고전적 전자기학 사이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한편, 20세기 초중반에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부분적인 통합이 양자전기역학이라는 결실로 이루어졌다. 양자전기역학을 정립한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디랙과 파인만이 있다. 핵물리학의 경우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의 X-선의 발견, 제임스 채드윅(James Chadwick)의 중성자 발견, 독일의 오토 한(Otto Hahn),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이 발견한 우라늄의 핵을 통해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또한 생명과학 분야는 20세기 이후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19세기에 발견된 멘델의 유전법칙은 20세기에 각광받기 시작했으며, 염색체속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을 1944년 에이버리(O.T. Avery)가 증명하였고 왓슨(J. D. Watson)과 크릭(Crick)은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면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왓슨과 크릭의 업적은 바이러스와 세균과같은 모델 생물을 사용하는 분자유전학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유전단위 코돈(codon)의 발견, 유전암호의 해독, CRISPR 유전자가위의 발견 등으로 유전학은 폭발적으로 발전하였고 유전학을 근간으로 하는 유전공학은 미래에 가장 각광받을 기술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다.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나 미래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통일장 이론이 꼽힌다. 후보군으로는 루프 양자 중력 이론, 초끈이론이 있다.
4. 기타
4.1. 한국의 자연과학
2020년대 기준으로 이전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한국은 국가 경제력에 비해 자연과학이 미흡한 편이다. 이는 경제성장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국가 인프라가 매우 큰 피해를 입어서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했다. 선진국들이 100~200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을 단 30~50년안에 이뤄내야 했던 것이므로, 한국 정부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했다.그리고 단기간에 성장을 이뤄야했기에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투입하면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연구 위주로 갔다. 그 결과,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돈을 투자해도 성과가 별로 안 나왔던 자연과학 연구에는 정부, 정치권, 국민 세 주체 모두가 응용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게 되었다. 그 증거로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국립 자연사박물관이나 공립 자연사박물관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5]
왜냐면 정부와 정치권 입장에서는 투입한 비용에 비해 실적이 나오지 않고,[6]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국가재정으로 지원해주었는데 연구 성과가 안 나오면 혈세낭비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기는 했다. 후발주자인 만큼 당장의 유의미한 성과가 크지는 않으나 상술했듯이 자연과학은 투자 기간이 길 수밖에 없는만큼 장기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다. 현재 전국 공립 과학관에 자연사관들이 세워지고 있으며[7] 지질박물관이나 국립생물자원관등이 건립된 상태이다.
또한 당장 고등학생들에게만 봐도 이과생 중 자연과학을 파려는 이는 많지 않다. 자연과학이 학문 자체의 흥미가 떨어지는 문제도 있지만 대부분은 취직과 돈을 이유로 공과대학을 선택하거나, 성적이 된다면 일명 의치한약수로 보이는 의과대학 계열로 가는게 현실이다. 나라에서 아무리 자연과학을 키우고 싶어도 미래에 이를 선도할 학생들부터가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발전 가능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데다, 심지어 2023년에 들어선 비효율 투자를 개선한단 목적으로 하위 20%를 구조조정한단 입장까지 발표해 #, 장기적이면서 불확실한 연구분야라면 지속적인 연구를 하는게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1]
자연과학대학과 동의어로 주로 미국식 학제의 영향을 받은 국립대에서는 자연과학대학으로 일본식 학제의 영향를 받은 사립대에서는 이과대학이라고 부른다.
[2]
단, 지리학의 세부분야인 자연지리학은 자연과학인
지질학과 관련이 깊다.
[3]
인류학의 경우는
인문학에도 접점이 있다.
[4]
이 사람 이름에서 '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유래된다.
[5]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소규모이고 지질박물관의 경우 화석이나 지질만 다루며 국립생물자원관의 경우 동물이나 식물만 다루기 때문이다.
[6]
거기다 정권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고 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의 지향점도 달라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제대로 발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7]
현재 광주과학관을 제외하면 전부 세워진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