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21:27

손덕오

성명 손덕오(孫德五)
이명 손덕호(孫德浩)
생몰 1867년 ~ 1910년 7월 18일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군 봉덕면 마티리
사망지 대구형무소
위패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손덕오는 1867년생이며 전라남도 보성군 봉덕면 마티리 출신이다. 그는 목수 신분으로, 1908년 2월 안규홍 의병장이 전남 보상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 휘하에 들어가 도포장(都砲將)·좌우포장(左右砲將)·좌우익장(左右翼將)을 차례로 맡으며 보성, 순천, 동복, 장흥 등지를 전전하며 안규홍의 지휘하에 일본군과 여러 차례 교전했다. 1908년 4월 6일에는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의병을 사칭해 양민으로부터 재물을 약탈한 강사문(姜士文)[1]을 포박하여 순천군 문전면 고부기 산중에서 총살했다. 또한 1909년 9월 4일에는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순천 낙서면 상고리로 가서 양민으로부터 재물을 탈취하던 일진회 회원 이용서(李用西)를 체포, 참살했다.

그러나 1909년 10월 1일 광주경찰서에 체포된 그는 1910년 3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 및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공소했지만 6월 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고, 1910년 7월 18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손덕오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강사문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