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제3대 민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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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權培
1916년 10월 6일 ~ 1990년 2월 19일
1. 개요
손권배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완주군 출신이며, 일본의 북강현구유미 명선중학교를 졸업했다.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손병식(孫炳植), 어머니는 동래정씨 정성녀(鄭性女)다[1].
2. 활동 내역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전북지부 선전부장, 반탁독립투위 전북지부 단장, 대한청년단 전라북도 단장, 국민회 전북지부 위원장을 지내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태백신문사 주간과 삼남일보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1954년에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완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이후 자유당 전북도당 부위원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사오입에 반발하여 탈당을 하였고 무소속으로 있다가 1956년에 민주당에 입당을 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철원군 선거구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서임수 후보에 낙선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정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을 했으며 1967년에는 신민당 중앙상임위원에 선임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진안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도중에 사퇴를 했다.
이후 1990년 2월 19일에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