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1457e><colcolor=#fff>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 국방장관 얀 세르게이 잉그르 Jan Sergěj Ing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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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4년 9월 2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변경백국 Vlkoš | |
사망 | 1956년 6월 17일 (향년 61세) |
프랑스 파리 | |
국적 | |
학력 |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대장 |
경력 | 체코슬로바키아 국방장관 |
1940년 7월 21일 ~ 1944년 9월 19일 | |
체코슬로바키아군 총사령관 | |
1944년 9월 ~ 1945년 4월 | |
주네덜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대사 | |
1947년 12월 ~ 1948년 3월 |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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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슬로바키아의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다.2. 생애
2.1. 제1차 세계 대전
191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서 전역 후 문법학교에서 수의학을 공부하기로 계획했으나 1914년 8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해 러시아 전선에 배치되었다. 1915년 러시아 제국군에 생포되었다. 수감 도중 러시아 제국 측으로 전향하여 오데사에서 러시아 제국 육군 소속 제1세르비아의용사단에 입대했고, 가톨릭에서 정교회로 개종한뒤 세르게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러시아 제국 육군 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창설된 이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으로 이적해 즈보로보 전투에 참전했다. 1917년 10월 프랑스군 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배속되었고 1918년 8월 이탈리아 왕국군 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으로 이동했다. 약 4개월 후 체코슬로바키아에 귀환했다.2.2. 전간기
1919년 프라하 육군사관학교에서 졸업했고, 1934년 준장으로 진급했다. 1938년 소장으로 진급한뒤 제3군단의 마지막의 군단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1년 후 나치 독일이 아무 저항없이 체코슬로바키아 내 체코지역에 진주하여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을 세우자 지하 저항군 국가방위군을 조직했고, 주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에 체코슬로바키아군 부서를 신설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군의 군인들을 프랑스로 탈출시키는 일을 지원했다.2.3. 제2차 세계 대전
1940년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의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전세가 연합국에 우세하던 1944년 말 공산주의자들의 압력으로 국방장관직에서 사임했고, 명예직 체코슬로바키아군 총사령관을 맡게 되었다.2.4. 냉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체코슬로바키아군 서방식 재건을 추진했으나, 소련식으로 재건하려는 코시체 정부의 정책으로 좌절되었다.1947년 9월 대장으로 진급했다. 12월 주네덜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대사에 임명되었다. 1948년 2월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 이후 대사직에서 사임했고, 영국으로 망명한뒤 자유 체코슬로바키아 평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1949년 미국 정부의 컨설턴트로 채용되었고, 망먕정부를 조직했다.
1956년 프랑스 파리에서 급사했다.
1991년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