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00:43:42

성일영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성일영
成一永[1]永으로 표기한 문헌도 있다.]
파일:성일영.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나리타 이치에이(成田一永)
본관 창녕 성씨
출생 1925년[2] 2월 7일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면 직교리[3] 87번지
사망 1986년 7월 20일 (향년 61세)
경상북도 구미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75호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25년 2월 7일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면(現 창녕군 창녕읍) 직교리 87번지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곽태진이 1942년 3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한 비밀결사대 호의단(護義團)에 입단했다. 이후 일본 제국 내선일체· 일선동조론 등의 식민사관을 동원해 한국 민족의 정통성을 부인한 것을 응징하려는 목적으로 당시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632번지에 있던 현풍 신사[4]를 불사르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였고, 또한 독립운동 방안으로 조국독립 의용군을 조직해 가야산 지리산을 무대로 한 무장투쟁을 전망하여 고령군 청도군 등지의 경찰서에 보관 중인 무기를 탈취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내부자의 밀고로 1945년 5월 12일부터 일본 경찰이 현풍신사 방화 사건을 탐지해 더 이상 계획을 추진하지 못하였고, 1945년 6월 체포되어 같은 달 23일 이른 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 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불기소처분 받아 구류가 취소되었고, 곧 출옥했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에 거주했고, 구미시로 이주해 살다가 1986년 7월 20일 사망하였다.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당초 2022년 10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이장되었다.

[1] [2] 1945년 당시 판결문에는 당시 51세(1895년생)로 기재되어 있어 이견을 보인다. [3] 인근의 외부리와 함께 창녕 성씨 집성촌이다. [4] 현재 이 자리에 달성 사직단의 유허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