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서대순(徐大順) |
생몰 | 1893년 10월 8일 ~ 1951년 3월 11일 |
출생지 | 황해도 연백군 연안부 대산동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서대순은 1893년 10월 8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부 대산동에 태어났다. 그는 3.1 운동 직후 배운성(裵雲成)과 김해룡(金海龍)으로부터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의 〈자유민보(自由民報)〉, 혁신공보(革新公報)〉를 인쇄해 줄 것을 의뢰받고 보통학교 소사실에서 자유민보 2천부, 혁신공보 3천부를 인쇄하여 서울과 지방에 배포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0년 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이후 출옥한 그는 김상옥, 한훈 등과 함께 암살단을 조직하고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이 한국에 방문하는 틈을 타 일제 고관을 암살하고 주요 기관을 폭파해 의원단에게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보여주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무기를 운반하던 한훈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 모든 것이 발각되고 말았고, 결국 그는 또다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조용히 지내던 서대순은 8.15 광복 후 북한의 급격한 공산화를 피해 서울로 이주했고, 1951년 3월 11일에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1997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서대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