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의 정당은 새로운 희망(폴란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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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12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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תקווה חדשה | |
한글명칭 | 새로운 희망(새희망당) |
상징색 |
파란색 청록색 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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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기드온 사르 |
창당일 | 2020년 12월 8일 |
이념 |
국민자유주의 보수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시오니즘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우파 |
당사 | Zohar Tal, 텔아비브 |
크네세트 의석 수 |
4석 / 120석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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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라엘의 국민자유주의 정당.2. 성향
네타냐후와 반목이 있어 분당을 선택하긴 했으나, 리쿠드와 어느정도 유사한 성향을 띄며 양국 방안에 반대한다.3. 역사
2020년 12월 8일 기드온 사르 전 내무장관이 창당했다.사르는 본디 리쿠드 소속 정치인이었고, 베냐민 네타냐후 밑에서 장관을 지내면서 승승장구했던, 전형적인 리쿠드의 거물급 인사였다. 그러던 그가 리쿠드를 탈당하고 이 당을 창당했는데, 여기에는 2019년 전당대회가 그 배경이었다.
2019년 한 해에 두 번이나 총선을 치러야 할 정도로 정치적인 불안이 심해지자, 2009년부터 쭉 집권해 온 네타냐후 총리 겸 리쿠드 대표의 입지가 불안해졌는데, 마침 전당대회가 치러지게 되면서 사르는 네타냐후의 강력한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사르가 대표가 될 경우 재총선 시 되레 의석 수를 조금 더 까먹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고, 결국 사르 돌풍은 소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여기에 리쿠드 내에서 네타냐후의 입지가 원체 굳건했던지라, 전당대회 결과 네타냐후가 싱겁게 승리했다.
이후 사르는 승복하면서 모든 게 일단락 되는 듯 싶었으나, 2020년 3월 총선 결과 리쿠드가 원내 1당 지위를 되찾고,[1]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중대한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코로나 극복"이라는 명분 하에 거국내각이 출범하게 되어 네타냐후의 입지가 더욱 더 굳건해졌고, 사르의 입지는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에 분노한 사르는 마침 35차 정부(거국내각)가 내분으로 붕괴되자, 이 틈을 타 리쿠드를 탈당하고 '새로운 희망'을 창당했다. 리쿠드의 기반을 그대로 갖고 창당되어서 대부분의 의원들이 리쿠드 출신이었지만, 데레흐 에레츠 소속 의원 2명도 추가로 합류했다.
그리고 2021년 총선 결과 6석을 획득했다. 4차 총선 후 친네타냐후 블록과 반네타냐후 블록이 모두 크네세트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리쿠드와 네타냐후가 교대정부 형태로 연정을 제안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베냐민 네타냐후와 다시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2], 네타냐후와의 앙금이 아직도 안 씻겼는지, 결국 예쉬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 대표 손을 들어주면서 네타냐후의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는 베네트-라피드 내각에 참여했다.
[1]
종전에 잠시
청백동맹에게 1당 지위를 내주기도 했다.
[2]
세속주의 성향이 짙어 다른 우파 정당과의 화학적 결합이 어려운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를 제외하고도 우파 정당이 과반이라서 단순 숫자 상으로는 안정적인 범우파 연정이 충분히 가능했다. 협상 초기에는
야미나가 범우파 연정을 선호했다는 점을 감안해볼때, 새로운 희망만 동의하면 범우파 연정이 출범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