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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연방 공화국의 주 Estado de Santa Catarina 산타카타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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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 | 플로리아노폴리스 (Florianópolis) | |
최대도시 | 조인빌리 (Joinville) | |
면적 | 95,736km² | |
인구 | 7,338,473 명 (2021) | |
인구밀도 | 76.65명/km² | |
1인당 GDP | 10,783 $ | |
GDP | 726억 $ | |
HDI | 0.808 | |
시간대 | UTC-3 (BRT) | |
약칭 | SC | |
주지사 | Jorginho Mello | |
부지사 | Marilisa Boehm | |
상원의원 |
Esperidião Amin Ivete de Silveira Jorge Seif |
Estado de Santa Catarina
[clearfix]
1. 개요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플로리아노폴리스이다. 북쪽으로는 파라나 주와, 남쪽으로는 히우그란지두술 주와 접하고 있다. 주의 이름은 주도 플로리아노폴리스가 위치한 산타 카타리나 섬에서 따 왔다.2. 환경
면적은 약 9만 5천 km²로 남한과 비슷한 크기이며 인구는 약 7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주이며 도시 경관이 아름다운 장소가 많은 편이다.지형으로 보면 해안을 따라 브라질 고원의 남쪽 가장자리인 세하두마르(Serra do Mar) 산맥의 남쪽 연장인 세하제라우(Serra Geral) 산맥이 지나가고 있고, 내륙 지역엔 아라우카리아 우림으로 불리는 숲이 분포한다. 기후도 해안 지역은 아열대 기후이지만, 라지스를 비롯한 내륙의 고산 지역은 서안 해양성 기후와 유사한 Cfb를 보인다.
주도는 플로리아노폴리스이지만 브라질에서 유이하게[1] 주도가 가장 큰 도시가 아닌 주이다. 뚜렷한 중심 도시가 없이 주도 플로리아노폴리스와 주 최대 도시인 조인빌리와 이타자이, 블루메나우, 샤페코, 크리시우마 등의 도시들에 인구가 흩어져 있다.
3. 역사
1526년, 세바스티안 카보토라는 탐험가에 의해 처음 유럽에 알려졌다. 본래 살던 원주민들은 투피과라니 족의 일종인 카리주스 족이었다. 이들은 이후 가톨릭 선교사에 의해 개종되고 교육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6세기 동안엔 상주 인구는 없었고 탐험대나 선교사들만이 잠깐씩 방문했다. 남부 지역은 자원도 부족하고 기후도 서늘하여 포르투갈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1658년, 상프랑시스쿠두술이라는 마을이 처음 들어섰다. 1675년엔 지금의 플로리아노폴리스가 세워졌다.[2] 1738년, 산타카타리나 카피타니아[3]가 생겼지만 이듬해 리우데자네이루 카피타니아로 병합되었다.1740년대부터 동 주앙 5세의 명으로 남부 지역의 개척이 활발해졌다. 이를 위해 마데이라 제도과 아소르스 제도에서 이민자를 충당했다. 1776~1777년에 발발한 스페인-포르투갈 전쟁으로 산타카타리나 섬[4]이 잠시 스페인에 넘어갔으나 산일데폰소 조약을 통해 다시 포르투갈로 반환되었다.
1835년, 히우그란지두술에서 발발한 파하푸스 전쟁은 이웃해있던 산타카타리나에도 영향을 미쳤다. 1839년 7월, 산타카타리나 반군은 라구나라는 항구 도시를 점령하고 줄라이나 공화국을 수립하여 파하푸스 전쟁에 적극 참전했다. 하지만 당시 주도인 데스테후를 점령하지 못했고 결국 4개월만에 진압되었다.
1889년 11월 17일, 제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들어섰으나 당시 주지사는 연방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1894년, 반란이 진압되고 당시 주도인 데스테후의 이름을 플로리아노폴리스로 변경했다.[5] 1912년부터 4년간 파라나주와 영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0년, 산타카타리나 연방 대학교가 설립되었다.[6] 주립 대학교는 1965년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