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2:32:34

사사(후한)



성씨 사(士)
사(賜)
베트남어 시 트(Sĩ Tứ)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역임관직 일남태수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후한의 관료. 사섭, 사일, 사유, 사무 형제의 아버지.

2. 생애

본래 사사는 예주 노국 문양현이 본관이었다. 전한이 멸망하고 왕망 신나라가 세워지는 혼란이 벌어지자, 그의 조상은 교주로 피난가면서 정착했다고 한다.[1]

교주로 피난간 사씨의 6대손인 사사는 환제(후한) 시기(142~167) 교주 최남단 군현인 일남군(日南郡) 태수를 지냈다. 사망 시기는 불명이나, 아들인 사섭이 아버지의 상을 치른 후 187년 교지태수로 부임한 것으로 늦어도 184년경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기타

라프 데 크레스피그니가 논문을 통해 사섭과 교주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섭이 지배하지 못한 창오군, 일남군, 울림군이라며 그 중 일남군에 대해 사사의 영향력 때문인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했으며, 사사는 일남군의 태수가 된 것이 고향 땅의 태수가 된 것이라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데도 부임한 것으로 사씨 일족의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과 중앙에 얼마나 이 지역을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1] 그의 아들들이 전부 창오군 광신현 출신인 것으로 보아, 교주로 피난간 사씨들은 창오군 광신현(오늘날 광시좡족자치구 우저우시)에 정착한 걸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