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1]
이 소설은 1954년,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집필한 대표적인 반전 소설이다. 동작가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이 배경이라면,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이 배경이다. 출판 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1958년에는 더글러스 서크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 하기도 했다.
1958년작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포스터.
영화 내용은 실제 소설과는 꽤나 다르다. 일단 그래버의 가장 절친한 동기이자 고향 친구인 프레젠부르크는 아예 삭제가 되었으며, 소대장 뮬러 역시 삭제되었다. 그리고 그래버의 동기들 중 임머만을 제외한 나머지(예를들어 샤우워, 베르닝, 슈나이더 등)는 등장하긴 하는데 아예 공기취급이며[2], 주임원사 뮤케 역시 공기화되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그래버가 다시 자대 복귀를 한 날, 임머만이 포도주가 든 커다란 독을 차지하려다 소련군의 포탄에 맞아 사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작소설에선 임머만은 소설 끝날 때까지 사망한다는 내용이 없다. 즉, 소설 속 배경 이후에는 그 역시 전투에서 전사하였을지 몰라도 최소한 주인공인 그래버보다는 오래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슈타인브레너에 대한 언급 역시 원작소설에서는 그가 무장친위대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친위대라는 언급이 전혀 없이 그냥 당에 좀 충성적인 국방군으로 등장한다.
국내에서는 민음사에서 번역한 버전이 유명하다.
2. 줄거리
1943년 겨울, 프랑스와 북아프리카 전선에도 참전한 바 있는 주인공 에른스트 그래버는 3주간의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간다.오랜만에 전선에서 벗어나 휴가를 떠나게 된 그는 2년 동안이나 소식이 끊겼던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그래버가 살았던 도시는 미국과 영국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 있는 상태. 부모님의 생사는 알 길이 없었고, 여기저기 부모님에 대해 수소문을 하나 부모님의 행방은 묘연했고 그러는 동안 그래버는 징집되어 장교가 된 동창을 비롯한 옛 급우들과도 만나는 데 같은 반이었던 반딩은 돌격대장이 되어 있었고 그래버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다가 그래버 부모님의 절친이였던 의사 크루제 박사의 딸이자, 자신의 대학교 동창이였던 엘리자베트 크루제를 만났고 뒤늦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뒤늦게 알고 보니 크루제 박사는 2차대전에서 독일의 승리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수용소( 다카우 수용소로 추정)에 잡혀갔고, 엘리자베트 자신은 나치당원인 린저 부인의 감시 하에 아주 어려운 상황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자기 자신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래버는 점점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당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다. 옛 은사인 폴만과 유대인 도피자 요제프와의 만남 속에서 그래버는 자신이 이 범죄에 공범임을 확신하고 고뇌를 거듭한다.
비록 부모님은 찾을 수 없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래버는 엘리자베트와 고급 레스토랑도 가고, 공원도 가고, 같이 술도 마시면서, 온갖 즐거운 데이트를 한다.[3] 그녀와 고뇌를 나누며 전쟁과 폐허가 없는 곳에서 살아가길 꿈꾼다. 물론 이따금씩 엘리자베트와 잠자리를 가졌던 것은 덤. 심지어 둘은 휴가 중에 결혼도 하는데, 참 슬프게도 결혼하고 단 하루만에 그래버는 휴가가 끝나 일선에 복귀하게 된다.
일선에 복귀하였지만 이미 그래버의 자대는 원래 있었던 곳보다 120km나 밀려나 있었다. 소련군의 공격으로 그래버의 자대까지도 밀어버린 것이다.[4] 밀려오는 소련군과 전투를 치른 그래버는 일단 위기는 무사히 넘겼으나 곧 파르티잔 혐의를 받고 있는 소련인 포로 네 명을 지키는 간수 역할을 맡게 된다. 다른 독일군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호의적으로 대우해주는 그래버에게 늙은 포로는 독일이 이미 전쟁에서 졌다며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 함께 도망가서 숨자고 제안하고, 그래버는 밤새 흔들리며 고뇌한다. 그러나 그래버가 잠시 잠든 사이 무지막지한 소련군의 진격 속도는 그래버가 있는 마을까지 도달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슈타인브레너는 포로들을 모조리 총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그래버는 또한 나치즘과 전쟁에 환멸을 느꼈는지라 슈타인브레너에게 꺼지라고 말하다가 시비가 붙는다. 결국 그래버는 권총을 뽑아들려는 슈타인브레너를 총으로 쏘아죽이게 되고, 소련인 포로들이 갇힌 감옥의 물쇠를 열쇠로 연다, 그리고 소련인들에게 도망치라고 권한다. 소련인들을 그래버를 힐끔힐끔 보다가 이윽고 도망가는데, 그 도중 포로 중 하나가 총을 들고 그래버를 사살한다. [5]
3. 등장인물
- 에른스트 그래버
- 루트비히 프레젠부르크
- 임머만
- 사우어
- 베르닝
- 슈나이더
- 라에
- 뮬러
- 뮈케
- 히르쉬란트
- 막스 슈타인브레너
- 엘리자베트 크루제
- 알폰스 빈딩
- 폴만
- 요제프
- 오토 뵈트허[9]
- 린저
- 로이터
- 룸멜
- 하이니
4. 일화
이 책은 영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판이 먼저 출간되고 이후 키펜호이머&비치 출판사에서 독일어로 출간했는데, 민음사판 역자에 따르면 독일어판에서는 독일인들이 불쾌하게 느낄 수 있을만한 원본의 상당 내용[10]이 수정되어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11] 작가 자신도 이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출판을 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동의하였다고 하며, 출판사는 이후 1989년에야 삭제를 롤백한 원본판을 독일에 출판한다.참고로 이 소설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상황과 독일인들의 심리, 독일군의 병영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작가가 1932년에 스위스로 망명, 1939년에는 미국으로 망명했기 때문. 소설을 읽어보면 좀 어색한 묘사가 종종 등장하는데 병사들과 민간인들조차 강제 수용소의 위치,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가스실의 존재 유무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당시 독일에서도 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12] 그렇다고 저렇게 속속들이 아는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돌격대의 경우 장검의 밤 이후엔 친위대의 하부 조직 정도로 격하되었고 지역의 치안 유지 정도의 임무를 맡다가 대전 말엔 국민돌격대와 같이 소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친위대 출신인 슈타인브레너가 국방군 중대에 있는데 오히려 인력부족에 시달리던 친위대가 해군이나 공군 육군으로부터 인력지원을 받았지 친위대 병사가 국방군에 편입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중대장부터 선임하사까지 일개 사병인 슈타인브레너가 단지 친위대라는 이유만으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이것도 현실을 생각하면 넌센스. 오히려 친위대도 육군 장군의 지휘 하에 편입되거나 명령에 따를 때가 많고 두 조직간의 균형이 서로 비등했기에 이런 묘사는 말이 안된다. 당시 독일에 있지 않았던 작가가 무장친위대가 하는 역할을 정확히 모르고, 정치장교 비슷한 존재로 생각했을 공산이 있어 보인다.
실제 참전자들의 수기에 대해 알고 싶다면 국방군의 경우 기 사예르 상병의 회고록 <잊혀진 병사>, 무장친위대의 경우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중사의 <폭풍 속의 씨앗>을 추천한다.
[1]
레마르크는 1929년에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간한 이후로도 귀로, 세 전우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개선문 등을 저술했는데 1차대전 시절의 경험담을 다룬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마찬가지로 1차대전 후의 전간기, 2차대전 때 까지의 본인의 경험을 녹여낸 자전적 작품들이다. 비록 본 문서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시대인 2차대전기에는 레마르크가 이미 미국으로 이민 간 후였기에 본인의 경험담은 아니었겠지만 이전의 작품들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2]
어느 정도냐면 그냥 중대장 라에가 '
관등성명을 불러서 대답하는' 것으로 등장이 끝난다(...)
[3]
여기서 반딩의 도움도 크게 한몫 한다.
[4]
이전엔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던 1944년이라 나오는데 소설 속의 시간대는 1943년 말이다.
[5]
포로들이 확실히 파르티잔이라고 하는 부분은 없다. 슈타인브레너의 언급이 있긴 하나 문맥상으로 따져 볼때 진짜 파르티잔이라고 단정짓기엔 어폐가 있다. 거기에 민음사판 부록에 따르면 소련 파르티잔이라고 나온 것은 1954년에 나온 검열판으로 원래 파르티잔이 아니었다고 한다.
[6]
그런데 어떤 번역본에서는 사회민주당 출신이라고 나온다.
[7]
굼비넨 전투.
[8]
이 인간은 당연히 게릴라들을 총살시키자고 했고 그래버는 힘 없는 농부들일 뿐이라며 풀어주려고 했다
[9]
타 번역본에서는 뵈트허가 아니라 베챠라는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10]
슈타인브레너 등 독일의 전쟁범죄에 관한 내용이라든가 마지막 장면의 포로에 대한 내용 등이 수정되었고 10페이지 가량의 분량은 아예 삭제되었다고 한다.
[11]
한국어판 역자는 이에 대해 '러시아와의 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정상적인 전쟁일 뿐이라는 논지이며, 나치 체제를 등장시킨 독일 시민사회의 책임을 은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12]
유대인들이 기차에 태워져서 끌려가고 그 사람들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일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수용소라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짐작하기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작업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도 불가능 하기에 수용소에서 소위 '운터멘쉬'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은 이미 독일 패망 이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한 사례로 수용소 굴뚝으로 하도 연기를 피워대서 냄새가 나자(당연히 시체를 태우는 연기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시체 태우는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항의 한 경우도 있었다. 학살의 방식이나 경과까지 정확히는 몰랐을지언정 학살이 벌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