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 Vigo |
|||
국가 | 스페인 | ||
지역 | 갈리시아 | ||
면적 | 109.1㎢ | ||
인구 | 293,642명 | ||
시간대 | UTC+1 ( 서머타임: UTC+2) | ||
비고 (스페인) | |||
[clearfix]
1. 개요
스페인 갈리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유럽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도시다. 박주영이 뛰었던 축구 클럽 셀타 비고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템플 기사단 단원이었던 한 기사단원이 성당 앞에 커다란 올리브 나무를 심어서 올리브 도시라는 별명이 있다.2. 어원
비고의 어원은 라틴어로 농장을 의미하는 Vicus에서 유래되었다. 다만 만을 의미하는 바이킹 단어 Úig에서 유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3. 역사
비고와 그 지역은 시정촌의 여러 지점에서 발견된 많은 고인돌과 마조[1]가 증명하듯이 먼 옛날부터 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였다. 로마 시대 항구 도시로 발전하였다. 로마 시대에 소금 공장, 항만 시설, 네크로폴리스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게르만족의 침공과 바이킹의 공격은 이 지역 시민들을 내륙으로 도망가게 만들었고, 비고는 사람이 없는 도시가 되었다.그러나 12세기 인구가 회복되기 시작하였고 항구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해적들이 비고를 노렸다. 바르바리 해적들이 끊임없이 비고를 노린 것이다. 또한 스페인이 자코바이트 봉기를 지원하기 위해 함대를 보내자 영국군이 열흘 동안 비고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 프랑스가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자 민중 봉기를 일으켰고, 이 사실을 안 페르난도 3세가 충실하고 충성스럽고 용기 있는 도시(Ciudad Fiel, Leal y Valerosa)라는 칭호를 하사하기도 하였다.
1947년 스페인 정부가 갈리시아 남부의 국제 무역과 경제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자유무역지대를 부여한 덕분에 20세기에 매우 빠르게 성장하였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스페인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4. 관광
비고 해안에는 파도가 파도치는 모래사장, 거친 석회암, 가족 해변, 나체 해변, 도시 해변 17등 47개의 석회암과 해변이 있어 관광 산업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해변과 해변에는 스포츠 공간, 샤워장, 족욕장, 산책로, 적십자 인명 구조대 및 구조 초소, 장애인을 위한 공간 등 사용자를 위한 다양한 시설이나 서비스가 있다. 또한 앞에는 시에스 제도가 있어 크루즈선이 많이 드나든다. 시에스 제도의 군도는 엄청난 생물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 갈리시아 대서양 제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7년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시에스 제도의 해변을 유럽의 카리브해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극찬하기도 하였다.5. 경제
어업과 수산물 가공업, 제조업, 무역, 관광 및 서비스업이 주된 산업으로 갈리시아 지방의 경제와 산업을 이끌고 있다. 항구도시라서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있으며 이와 연관된 공장들도 많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PSA, 푸조, 시트로앵의 공장이 1958년부터 가동되고 있다. 비고는 유럽에서 가장 큰 어업 항구로 전세계 최대의 수산물 가공회사 페스카노바와 이베르콘사가 있다. 유럽어업통제국 본부도 비고에 있고 주기적으로 세계 낚시 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1]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 신석기 시대의 특징적인 장례식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