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화제국(1915~1916)을 포함하는 중원의 황제국들을 분류합니다.songsonghosoo2002
송OO
출생
2002년 4월 7일 (일요일)[1] (22세)
불명
거주지
비공개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가족
아버지 송OO[2], 어머니 김OO(1974년생) songsonghosoo2002 애미애비 이혼한 개썅년 잼민이 개새끼
애미애비 사랑 못받은거 티내구 자빠졌네 씹새야
할머니 박OO 니 할매새끼 잡아다가 보신탕 끓여먹을꺼다
친구 이OO 찐따새끼가 친구 1마리밖에 없는 병신ㅋㅋㅋ 현실모습이 얼마나 병신일지 상상된다ㅋㅋㅋ
학력
산곡남초등학교 (졸업)
산곡남중학교 (졸업)
인천산곡고등학교 (졸업)
인천예림학교 (졸업)
소속
없음
활동 시작일
2014년 - (리즈 시절)
2019년 1월 14일 - (나무위키)
(+1968일째)
1. 개요
2. 특징
3. 유년기에 일어났던 사건 및 사고
4. 1990년대에 들어가는 해
5.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6. 세기
7. 밀레니엄
1. 개요[편집]
2002년 4월 7일 생.
소개 글.
2. 특징[편집]
자주 컴퓨터로 프로그램으로 사용을 하며, 그리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을 해 노는 경우도 있다.
3. 유년기에 일어났던 사건 및 사고[편집]
회차
연도
사건 및 사고
0
2000년
20세기의 마무리와 마지막 해
1
2001년
IMF 관리 체제 종료
9.11 테러
2
2002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
2003년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
대구 지하철 참사
4
2004년
KTX 개통
5
2005년
불명
6
2006년
대중문화 - 스포츠 대격변
7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8
2008년
참여정부 → 이명박 정부
숭례문 방화 사건
9
2009년
2000년대의 마지막 해
마이클 잭슨 사망
4. 1990년대에 들어가는 해[편집]
1990년 -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1990년대)
5.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편집]
2000년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00년대)
6. 세기[편집]
20세기
21세기
7. 밀레니엄[편집]
제2천년기
제3천년기
파워링크
광고
광고등록
밀양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2007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대한 내용은
밀양(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wiki style="margin:-12px -0px" | <tablebordercolor=#f15a38>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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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 면 | |||
하남읍 | 단장면 | 무안면 | 부북면 | ||
산내면 | 산외면 | 상남면 | |||
상동면 | 청도면 | 초동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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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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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
시청
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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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동 | {{{#!wiki style="margin: -16px -11px -5px;" | }}} 삼문동 | ||||||
삼문동 |
경상남도의
자치시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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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密陽市 Miryang City |
}}} | |||
<colbgcolor=#59c134><colcolor=#fff> 시청 소재지 | 밀양대로 2047 (교동) | |||||
광역자치단체 | 경상남도 | |||||
하위 행정구역 | 2 읍 9 면 5 동 | |||||
면적 | 798.67km² | |||||
인구 | 101,535명[1] | |||||
인구밀도 | 127.13명/km²[2] | |||||
시장 |
|
안병구 ( 초선) | ||||
시의회 |
|
10석[3] | ||||
|
3석[4] | |||||
|
2석[5] | |||||
국회의원 |
|
박상웅 (초선) | ||||
상징 | <colbgcolor=#59c134><colcolor=#fff> 시화 | 철쭉 | ||||
시목 | 소나무 | |||||
시조 | 까치 | |||||
지역번호 | 0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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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질 무렵, 밀양강과 밀양 시가지 #[6] |
밀양시청사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로 2047 ( 교동) |
동쪽으로는 경상남도 양산시[7]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쪽으로는 경상남도 창녕군, 남쪽으로는 경상남도 김해시와 창원시 의창구,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청도군에 접해있다.
경부선 철도의 주요 연선 지역 중 하나로 부산광역시와 대구광역시 중간에 있고, 경상북도 청도군과 마주보고 있다. 울산광역시과 창원시도 인접해 있어서 경상도의 주요 대도시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대도시들 모두 밀양시에서 차로 1~2시간 만에 갈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여러 대도시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고 있는 도시이다. 밀양시청을 기준으로 밀양에서 창원까지는 31km, 부산까지는 47km, 대구까지는 43km, 울산까지는 51km이다.
이런 위치적 특성 때문에 밀양은 권역별로 영향력이 다양한 편이다. 삼랑진읍과 상남면 일대는 양산시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고, 밀양 시내 북부의 부북면과 청도면, 상동면은 대구의 영향력이 더 강한 편이다. 그리고 산외면과 산내면, 단장면은 울산의 영향력이, 하남읍, 초동면, 무안면은 창원시의 영향력이 크다. 밀양 시내는 독자 권역에 가깝다.
2. 상징
밀양시의 CI | |||
■ 찬란한 문화역사를 바탕으로 정열 넘치는 밀양시민의 기질표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역대 CI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colbgcolor=#fff,#191919>
1989년 ~ 2006년 |
밀양시로 승격한 1989년 이후 2006년까지 사용한 로고. | }}}}}}}}}}}}}}} |
밀양시의 도시브랜드 |
'해맑은 상상 밀양'은 |
밀양시의 마스코트 |
밀양아리랑 |
3. 역사
삼국시대 초기 변한의 땅으로 미리미동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기원전부터 6세기까지 가야에 속하였으나 법흥왕 시기에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미리벌)[8]이 되었다. 757년( 경덕왕 16)에 전국 지명을 한화할 때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하였다. 밀성군 휘하의 다섯 영현으로 밀진현(密津縣, 삼랑진읍), 상약현(尙藥縣, 창녕군 영산면), 오구산현(烏丘山縣, 청도군 청도읍), 형산현(荊山縣, 청도군 화양읍), 소산현(蘇山縣)을 거느린 지역 중심지였다. 고려시대 995년( 성종 14)에는 밀주군이 되었다. 이후 농민 반란에 휩쓸려 잠시 천민 지역인 향·소·부곡으로 격하되고 마는데, 이 때 이름은 '귀화부곡'이었다. 현재도 바로 옆동네 창녕의 부곡온천으로 유명한 부곡면이란 지명으로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 1401년(태종 1)에는 다시 격상되어 밀성군으로 칭하다가 1415년에 밀양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미 15세기 경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후에도 조선시대 내내 영남대로의 주요 중간 기착지로서 대구와 동래(부산)를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1895년(고종 32)에 대구부 밀양군, 1896년에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4년 양산군, 김해군, 영산군의 일부를 병합하고 청도면을 신설하여 12면을 관할하였다. 1923년 밀양면을 指定面으로 하고 1928년 하동면이 삼랑진면으로 개칭되었다. 1931년에 밀양(지정)면, 1963년에 삼랑진면, 1973년에 하남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다. 1946년 밀양읍 대성정을 상동면 안인리로 하였다. (구 대성역소재지) 1989년에 밀양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시·군이 분리되었다.
1905년 개통한 경부선 덕분에 여전히 교통의 요충지로 이름을 알렸다.
1919년 4월 4일 이곳에서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지시로 전국 사찰에서 만세운동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통도사의 학승들이 표충사를 방문해 만세 운동을 권유하여 표충사의 승려 50여명과 주민 1,500여명이 단장면 태릉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킨 것. 현재 태릉시장에는 이 사실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같은 밀양 땅의 삼랑진이 더 중요한 지역이어서 이곳에 있는 삼랑진역은 필수정차역이었다. 그래서 밀양시내는 상대적으로 삼랑진보다 인구수도 적고 듣보잡 취급을 받았다. 광복 이후부터 발전을 거듭하였고, 1980년대 드디어 새마을호가 밀양역에 정차하게 되면서 밀양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때 이미 삼랑진은 끝도 없이 몰락해 갔다. 지금은 무궁화마저도 일정 배차량 말고는 안 서고 통과하는 역이 삼랑진역이다.
1995년 1월에는 밀양시와 밀양군이 재통합되어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4. 지리
분지도시의 끝판왕인 대구광역시만큼에는 못 미치더라도 이 곳 역시 만만찮은 분지로 이루어진 도시다. 밀양시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밀양 중심부 시가지와 밀양 중남부(상남면, 하남읍)는 거의 평탄한 지형이고, 시가지를 둘러싼 나머지 읍, 면 지역은 거의 산지로 되어 있다. 따라서 여름에 합천, 대구, 거창, 춘천 등과 함께 전국적으로 가장 무더운 도시로 손꼽힌다.밀(密)이란 한자는 후대에 음차를 해서 기록한 것일뿐 원래 어원은 고대 물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고대 가야 시기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5~6m 높았으며 부산의 강서구를 비롯한 김해평야와 밀양평야 일대가 전부 바다였다. 밀양의 뜻은 물기많은 땅.(기사) 이랬던 곳이 해수면이 낮아지고 점차 습지와 뻘로 변해간 것이다. 이 현상을 오늘날에도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는 것이 낙동강하굿둑이 건설되기 전까지 밀물 때는 바닷물이 삼랑진까지 차올라 왔었다. 이 바다가 사라지면서 오랫동안 벼르던 신라가 금관가야를 병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라때는 밀양을 두고 미리벌과 밀벌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물기 많은 땅으로 당시 습지가 된 지명을 반영하고 있다. 밀양벌판이 대구벌판에 못지 않게 상당히 넓은 평야와 낙동강을 끼고있는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와서야 취락이 형성된 것을 보면 김해평야와 마찬가지로 염해 습지가 후대에 와서 점차 농경이 가능했던 이유로 보인다.
지형적으로는 크게 밀양강과 청도천 유역으로 나뉜다. 밀양 본시가지 및 이와 접한 상동면, 상남면 등이 밀양강 유역이며, 청도면, 무안면은 청도천 유역으로 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해발 500m가 넘는 화악산 - 종남산 - 덕대산 산줄기가 두 하천 유역의 경계를 이룬다. 두 하천은 모두 낙동강의 지류이기 때문에 낙동강으로 합류하며, 낙동강에 접한 하남읍과 초동면에는 비교적 큰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강수량은 연평균 1,200mm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경상남도의 기후를 감안하면 좀 적은 편이다. 인근의 대구광역시와 대개 유사한 기후를 보인다. 큰 태풍이나 비가 많이 오더라도 큰 피해는 없는 경우가 많다. 좀 많이 더운 것만 빼면 기후가 아주 무난하다.
밀양초등학교, 밀양여자중학교, 밀양중학교가 있는 삼문동 일대는 밀양강 한가운데 있는 하중도이다. 쉽게 말해서 섬이라는 얘기다. 하중도에 한두 명 사는 게 아닌, 이렇게 거의 육지처럼 쓰여 유인도가 되는 건 국내의 몇 안되는 사례인데, 밀양역 앞 평지가 시가지로 뻗어나가기엔 좁기 때문에 역 건너편의 넓은 섬에 제방을 쌓고 개발한 것이다.
5. 인구
경상남도 밀양시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206,115명
|
1970년 191,110명
|
[1]
2024년 4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2]
2024년 4월 기준.
[3]
밀양시 가선거구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산내면, 단장면): 석희억, 박원태
밀양시 나선거구 (내일동, 삼문동): 정희정
밀양시 다선거구 (내이동, 교동): 강창오, 최남기
밀양시 라선거구 (삼랑진읍, 상남면, 가곡동): 조영도, 허홍
밀양시 마선거구 (하남읍, 초동면, 무안면, 청도면): 박진수, 김종화
비례대표: 손제란 [4] 밀양시 나선거구 (내일동, 삼문동): 정무권
밀양시 라선거구 (삼랑진읍, 상남면, 가곡동): 이현우
비례대표: 배심교 [5] 밀양시 제1선거구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산내면, 단장면, 내일동, 내이동, 교동, 삼문동): 장병국(초선)
밀양시 제2선거구 (삼랑진읍, 하남읍, 상남면, 초동면, 무안면, 청도면, 가곡동): 조인종(초선) [6] 아래쪽에 보이는 도로는 대구부산고속도로이다. [7] 다만 양산시는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8] 미리미동국, 미리벌(추화(推火)는 밀 추, 불 화 자로 '미리벌(밀불)'을 음차한 것)의 '미리'가 밀양의 '밀'로 이어졌다.
밀양시 나선거구 (내일동, 삼문동): 정희정
밀양시 다선거구 (내이동, 교동): 강창오, 최남기
밀양시 라선거구 (삼랑진읍, 상남면, 가곡동): 조영도, 허홍
밀양시 마선거구 (하남읍, 초동면, 무안면, 청도면): 박진수, 김종화
비례대표: 손제란 [4] 밀양시 나선거구 (내일동, 삼문동): 정무권
밀양시 라선거구 (삼랑진읍, 상남면, 가곡동): 이현우
비례대표: 배심교 [5] 밀양시 제1선거구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산내면, 단장면, 내일동, 내이동, 교동, 삼문동): 장병국(초선)
밀양시 제2선거구 (삼랑진읍, 하남읍, 상남면, 초동면, 무안면, 청도면, 가곡동): 조인종(초선) [6] 아래쪽에 보이는 도로는 대구부산고속도로이다. [7] 다만 양산시는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8] 미리미동국, 미리벌(추화(推火)는 밀 추, 불 화 자로 '미리벌(밀불)'을 음차한 것)의 '미리'가 밀양의 '밀'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