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榮膺皇后)| 영응황후
시호 | 영응황후(榮膺皇后) |
성 | 부씨 |
출생 | 불명 |
사망 | 407년 |
배우자 | 모용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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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연의 제 4대 황후이자 모용희의 황후.2. 생애
전진의 황족 부모苻謨의 딸로 태어났다.미모가 뛰어나고 요염했다고 전해진다.402년 언니 부융아苻娀娥와 함께 모용희의 후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모용희는 이 두 자매를 몹시 사랑했는데,특히 부훈영(苻訓英)을 더 사랑했다.모용희를 황제로 만들어준 태후 정씨가 분개하며 부훈영을 해하고 모용희를 폐위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역모를 들켜 살해당한다.404년 부훈영은 영응황후(榮膺皇后)로 책봉되었으며(404. 1), 언니인 귀인 부융아는 소의(昭儀)로 책봉되었다.그러나 부융아는 얼마 못가 숨을 거두고 만다.
모용희는 남은 부훈영에게 온갖 애정을 쏟았고,부훈영은 여름에 얼린 생선을,겨울에 생지황을 구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들을 했고 모용희는 이러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황제와 황후는 서로 찰떡궁합이었고, 항상 함께 다녔다.심지어 전쟁때도 모용희는 부씨를 항상 곁에 데리고 다녔다.[1]그 예시로 후연과 거란의 싸움에서, 모용희는 거란의 군대가 강성함을 알고 퇴각하려 하였으나 부훈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쾌해 하고 황제에게 전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다.아내의 청을 받아들인 모용희은 몇차례 공격을 시도했으나 무참히 패하고 군사를 물린다.그 뒤로도 둘은 정신 못 차리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다.
2.1. 죽음
407년 돌연 부훈영은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모용희의 나이를 감안해보았을때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사랑하는 황후의 죽음을 본 모용희는 혼절했고,깨어나 부훈영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통곡했다.모용희는 온 국민을 동원해 휘평릉(徽平陵)을 지어 부훈영을 묻었다.3. 기타
후연의 멸망에 크게 기여했고,모용희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뛰어난 미모로 모용희를 사로잡았으나 어리석은 상황판단으로 후연의 몰락에 기여하였다.4. 대중매체에서
그나마 제대로 나온 곳은 팩스토리facstory님의 유튜브에서이다.디자인은 묶은 머리와 갖가지 장신구,올라간 눈썹이 특징이다.정사와 마찬가지로 남편 모용희와 사이가 좋으며 정사와는 다르게 머리가 비상하고 전쟁에서도 뛰어난 머리로 활약한다.그러나 광개토대왕의 편지를 보고 화병이 나 몸져눕게되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삼국사기: 제왕의 연의에서 등장한다.정사와 마찬가지로 모용희에게 성을 함락할 당시 자신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한다.
[1]
물론 안전한 후방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