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부커 T. 워싱턴 Booker T. Washing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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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부커 탈리아페로 워싱턴 Booker Taliaferro Washington |
출생 | 1856년 4월 5일 |
미국 버지니아 주 헤일스 포드 | |
사망 | 1915년 11월 14일 (향년 59세) |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 | |
직업 | 교육자, 작가, 흑인 인권운동가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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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패니 N. 스미스 (1882년 ~ 1884년, 사별) 올리비아 A. 데이비슨 (1886년 ~ 1889년, 사별) 마거렛 머레이 (1893년 결혼) |
자녀 | 3명 |
종교 | 기독교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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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20세기 초 흑인 지도자이자 사상가. 동시에 노예의 신분에서 사상가로 탈바꿈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1]2. 상세
백인들을 상대로 폭력투쟁을 하는 것, 독립을 하자는 것 외에 실력을 양성하자는 실력양성론을 처음 내세웠다.흑인의 지도자였지만 반은 백인의 피가 흐른다. 버지니아 주 남서부에 있던 버로우즈 농장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쪽으로는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어머니 제인은 남부의 농장의 노예였으나 아버지는 백인이었다. 그는 끝내 백인 아버지의 신분을 알 수 없었다.
연방군 장교로 보이는 낯선 남자가 우리를 불러모아서는 짧은 연설을 한 다음 다소 긴 글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링컨의 해방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낭독이 끝난 후 우리는 모두 자유로우며 언제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어머니는 몸을 굽혀 아이들에게 뽀뽀를 했고, 기쁨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하셨다. 그 날은 당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해 왔지만 살아서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워했던 날이었다.
9세 때인 1865년 노예 해방으로 해방되었다. 흑인이 백인들로부터 멸시와 무시당하지 않고 미국 사회의 시민으로 당당하게 서려면 경제권을 획득해야 한다며, 그 경제력 획득의 방법으로 기술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앨라배마 주에 터스키기 기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가난한 흑인 자녀들에게 공업 기술을 익히게 했다.
현재는 흑인 보수주의의 원류로 여겨진다.
심훈이 쓴 상록수 소설에서도 그에 대하여 짧게 이야기하는게 나온다.
[1]
마지막 세대의 흑인노예들은 1950년대까지 생존이 확인된다. 1930년대 80대의 고령이 된 흑인 노예들과 남북전쟁 참전용사들이 미국 연방정부의 설문조사에 증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