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키이우주의 행정구역 (행정 중심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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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우크라이나 | 주도: 키이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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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cha Буча 부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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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000> 시기 | 시장 | ||||
국가 | 우크라이나 | ||||
주 | 키이우주 | ||||
면적 | 26,57㎢ | ||||
인구 | 42,279명[1] | ||||
시간대 | UTC+02:00( 서머타임 적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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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이우 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키이우와 가까운데다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고 비교적 저렴한 집값 때문에 많은 신혼부부가 살았던 곳이었다.
2. 역사
부차에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98년, 키이우-코벨 철도 노선이 개통되면서 부차 강변에 생긴 작은 간이역 주변에 정착촌이 형성되어 부차는 키이우-코벨 철도 노선에서 오늘 이르핀에 있는 것과 비슷한 기차역 중 하나였다.부차 기차역 근처에 벽돌을 생산하는 작은 마을 야블룬카가 있었다. 야블룬카는 19세기 폴란드 지리사전에 야부윈차 마을로 기록되었다. 폴란드 지리사전은 이 마을이 키이우에서 37베르스트[2]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전했다.[3]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키이우 주는 독일에 점령을 당했다가 1943년 12월 나치로부터 풀려났고, 앞서 부차에 니콜라이 바투틴 장군이 지휘했던 제1 우크라이나 전선 사령부가 주둔하기도 했다.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어 2020년에 키이우주 내 행정 구역으로 분리되면서 중요 도시로 자리 잡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군 한 명이 부차로 향하는 다리 한 곳을 자폭하여 파괴하면서 러시아군 진격을 늦추는데 공을 세운다. 이후 점령 되면서 러시아군이 비무장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상대로 자행한 학살이 일어났으며 다시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하였다.
전쟁 직전에 인구가 5만 3천명이 살고 있었으나, 학살 이후 인구가 1만 5천명 수준으로 줄었다.
2023년에는 재건이 완료되어 서유럽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1년 전 참혹했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시가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도시 곳곳에는 추모비들이 많이 세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