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3 02:21:54

본래면목

1. 개요2. 설명3. 수행4. 관련
4.1. 인도 철학4.2. 서양 철학4.3. 심리 철학4.4. 물리학4.5. 진화생물학4.6. 신학
5. 견해

1. 개요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모습. 나 자신과 우주만물의 궁극적 실체.

2. 설명

혜능이 이 용어를 선불교의 주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불교텍스트에 따라 부처, 깨달음, 열반, 도(道), 다르마, 불법, 불이, 참나, 진리, 이것 등 다양한 언어로 표기된다. 본래면목은 불교적 자아성찰에 국한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궁극적인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설법 중인 스님이나 재가법사가 중간 중간에 책상을 내리 치는 것은 언어사유에 함몰되지 말고 이 禪의 본질적 요체에 집중할 것을 청중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족첸, 현성공안은 본래면목이 이미 드러나 있기에 구태여 찾을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3. 수행

혜능 :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남악회양 :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곧 맞지 않습니다.”[1]
깨달음이란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증명되는 거기 때문에, 남 한테 뭐 무슨 뭐 합격을 통지받고 이런 게 아닙니다. 시험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알 수 가 있어요. 그냥 이 일 하나 뿐 인 겁니다. 이 자리 뿐 이고. 바깥도 없고 안도 없어요. 바로 지금 이 일 뿐이라! 이 일 하나 뿐! 이 일 하나 뿐! 이레 가리키면 인제 분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거 뭘 가지고 자꾸 이렇게 하는고? 모르는 거지. 당연히! 분별 속에 있기 때문에. 그걸 생각을 가지고 뭐 손가락을 든다, 뭐 놓는다. 무슨 뭐 눈앞에 보이는 뭐 동작이다. 뭐 별에 별 이해를 해봐야 그거 아무 쓸 데 없습니다. 전연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떤 티끌 만한 이해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2010년 김태완 설법 중[2]
선수행은 본래면목을 깨닫는 일이다. 수행자는 참선을 통해 본래면목을 언어사유(분별)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깨닫는다. 또한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원으로 여겨왔던 생각, 느낌, 육체가 본래면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깨달음의 역할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모든 분별은 망상이며, 만물은 하나기에 아상을 버리고 서로 자비심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선수행에 대한 불교계의 주류적 견해이다. 조사선은 생각으로부터의 자유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설지스님은 존재론적인 어리석음을 해소하는 실존적 효용을 강조한다. 테오도르 준 박은 '이뭣고' 수행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3] 티베트 불교에서 수행이란 공성을 이해하고 보리심을 실천하는 것이다.[4]

4. 관련

4.1. 인도 철학

우파니샤드의 철학자 야즈냐발키야는 참된 아트만을 언어적,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껏해야 ‘~가 아니다, ~가 아니다’(neti neti,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라고 부정하는 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5] 불이일원론은 우리의 자각이 이미 본래면목임을 말하고 있다.

4.2. 서양 철학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진리와 통한다. 구체적으로는 플라톤 이데아, 칸트 물자체, 하이데거 존재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를 부분적으로 계승하였고, 이를 '의지'와 '표상'으로 설명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며 침묵을 주문했다.

4.3. 심리 철학

로저 펜로즈, 데이비드 차머스, 김재권 등이 공론화 한 의식의 어려운문제와 관련 있다. 불이일원론은 알아차림(awareness), 불교는 일체유심조의 개념을 통해 의식의 주관성이 본래면목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식이 물질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이 성립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의식의 주관성을 환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비유기체적 물질로 재현 가능한가의 문제는 종교적으로 큰 함의를 가진다. 버나도 카스트럽 인공지능으로 의식을 창조하는 것은 의식과 컴퓨터의 계산행위간의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4.4. 물리학

“원자가 양립하기 어렵다고 본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거나 소립자와 같은 미시세계 상태가 중첩되는 있는 모습은 ‘존재와 비존재의 구분을 떠난다’는 중도 원리와 맞아떨어집니다. 현대물리학이 존재가 아니라 사건을 중심에 두는 것도 불교의 무아론(과정으로서 자아)과 일치해요.”
김성구 교수 한겨례 인터뷰 중[6]
과학과 불교는 관점과 목적이 다릅니다만, 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만큼은 같습니다. 과학과 불교의 세계관에는 모두 인과율이라는 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무척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구리 히로시, <지구인들을 위한 진리 탐구>[7]
물리학에서는 모든 것의 이론, 빅뱅이론과 관련이 있다. 김성구는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에서 불교의 여러 교리가 양자역학 상대성이론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오구리 히로시 또한 불교의 연기론, 무아론, 공 사상 등은 물리학과 겹친다는 점에서 석가모니를 과학자로 평가한다.

4.5. 진화생물학

"부처님은 나란 실체가 본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또 제1원인으로서 신은 없다고 했다. 세상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오직 연기(緣起)이다. 상호의존관계로 설명했다. 제1원인이 없는, 즉 설계자가 없는 설계, 경쟁자가 없는 경쟁이 바로 진화론이다."
강병균, 한겨례 인터뷰 중[8]
강병균은 불교의 무아론과 연기론이 진화론과 정확히 만난다고 주장한다.

4.6. 신학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 '무는 무에서 나오지 않는다'(ex nihilo nihil fit)와 같은 논의가 있다.

5. 견해

  • 십사무기에서 드러나듯,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본래면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가 윤회가 존재한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기에, 현재에도 강병균과 같은 단멸론과 상주론 사이에서 많은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 불이일원론 루퍼트 스피라는 '무한하고 경계없는 의식', '하나' 등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의 개별적 정신은 본래면목이 제한적으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물리학적인 시공간마저도 정신으로서의 본래면목이 인간이 인식 가능한 형태로 표현된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버나도 카스트럽과 함께 빅뱅이론이 '하나의 유효한 설명방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 짐 홀트가 이에 관해 철학,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를 내었다. 그의 개인적 결론은 만약 완전한 없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완전히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용 되며, 이는 '있음'을 낳는다는 것이다.
  • 숭산과 그 제자들( 현각 등)의 본래면목에 대한 입장은 '오직 모를 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계속적 질문(참나는 무엇인가?)을 통해 수행을 하는 것이다.
  • 법륜스님은 이와 비슷한 사변적 질문을 한 청중에게 독화살의 비유의 요지와 같은 말과 함께 '그러한 질문은 의미없으며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 버나도 카스트럽은 이에 대해 인간과 지구의 존재가 블랙홀이나 암흑물질과 다르다고 보지 않으며, 우주는 본래면목이 그 자신을 체험하는 방식인 것 같다고 대답한다.[9] 이는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신이 자신이 아닌 다른 것 되기'의 설명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 설지스님은 물고기가 물의 존재 자체는 알아도, 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거나 물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인간 또한 본래면목의 실체에 도달할 수 없으며, 다만 이에 대해 눈치를 채거나 확신할 뿐이라고 말한다.
  •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주창한 앨런 구스는 우주가 무로부터 나왔다는 점에서 '궁극의 꽁짜 점심'(ultimate free lunch)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다중우주론을 지지하며 우주가 매우 쉽게 탄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주는 점심 도시락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적 있다.
  • 강병균은 불교 선사들이 말하는 절대영원한 '참나'개념은 부처의 무아론을 부정하는 힌두교적인 망상이라고 말한다. 그가 연기 세계를 초월하는 실체는 없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연기 법칙을 본래면목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달라이 라마 14세 공성과 보리심이 법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마티유 리카르는 이를 '행동하는 이타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1] 남악회양이 이 답변을 하는 데에는 8년이 걸렸다. [2] 무심선원 월간소식지 2018년 11월 196호 [3] 테오도르 준 박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는 것도 기술” - 예스24 채널예스 [4] 달라이라마, 무아를 말하다 - 한겨례 [5] 알라딘 - 불교의 탄생 [6] “물리학의 양자역학과 불교 중도이론 놀랄만큼 닮았어요”- 한겨례 [7] 알라딘: 지구인들을 위한 진리 탐구 [8] “부처님은 최초 뇌과학자…불교도 과학 받아들여야” [9] Bernardo Kastrup: The origin of the universe and the meaning of life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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