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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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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본존불 주변에 조각되어 있는 범천상. 출처

1. 개요2. 설명

1. 개요

불교에서 브라흐마를 부르는 명칭. 범천(梵天), 범천왕(梵天王), 청정(淸靜), 적정(寂靜) 등으로 기록한다.

2. 설명

부처가 깨달음을 얻자 맨 먼저 찾아와 불법에 귀의했으며,[1] 이 깨달음을 중생들이 과연 이해 하겠냐는 고민에 며칠 동안 이대로 조용히 홀로 열반에 이를까 아니면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해 중생들을 구원할까 고민하던 석가모니를 설득해 불교를 세우게 했는데 이를 범천권청(梵天勸請)이라 한다. 이후 범천이라는 이름을 얻어 불교의 수호신 중 하나가 된다. 그 후로 인드라를 비롯해 아수라 등 많은 신들이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다만 남방 빨리어 문헌에는 조금 기록이 다른데, 사함빠띠라는 범천이 석가모니를 두 차례 설득했다고 나온다. 이외에 남방불전 문헌에는 여러 다른 범천들이 등장하여 유일신적 면모보다는 천인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신흥종교인 불교가 기존 주류종교의 최고신을 끌어들여 자교의 우위를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2] 힌두교에서는 브라흐마가 불법에 감화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부처(붓다)를 비슈누의 9번째 아바타라[3]로 설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 초기 불경인 아함경 중에 범천을 묘사하는 구절이 몇몇 있는데 불교에서 보는 브라만/창조주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전략)혹은 이런 때도 있었다. 이 (劫)[4][5]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때에 어떤 중생이 복(福)이 다하고 목숨[命]이 다하고 행(行)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이 끝나 허공의 범천에 태어났다. 그는 곧 그곳에서 애착심을 내어 다른 중생도 함께 그곳에 태어났으면 하고 원했다. 이 중생이 애착의 원을 일으킨 뒤에 다시 다른 중생이 목숨과 행과 복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을 마치고 범천에 태어났다. 그러자 먼저 범천에 태어난 중생은 곧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곳의 범(梵)이요, 대범(大梵)이다. 나는 저절로 있게 되었으며 아무도 나를 만든 자는 없다. 나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自在)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나는 중생의 아버지로서 나 혼자 먼저 있었고 다른 중생은 뒤에 왔으니, 뒤에 온 중생은 다 내가 조화로 만든 것이다.' 그 뒤에 온 중생들도 또 이렇게 생각했다. '저 분은 대범이다. 저 분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중생의 아버지로서 저 분 혼자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우리가 있게 되었다. 우리들 중생은 저 분이 조화로 만든 것이다.' 저 범천의 중생들은 목숨과 행이 다해 이 세상에 와서 태어났다. 그들은 점차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그들은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자기 자신의 본생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대범천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없다. 모든 뜻을 다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저 분은 중생의 아버지로서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저 범천이 조화로 만들었으므로 무상하여 변하고 바뀌며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후략)
- 동국대학교 한글대장경 불설장아함경 21. 범동경[6](불설장아함경 제 14권)
(전략)'범천은 저절로 있게 되었다.' 이것은 범지[7]들이 하는 말이다. 그런 소견 참되지도 바르지도 않으니 그저 그들의 소견일 뿐이니라. '우리 주인이 연꽃을 피웠고 그 속에서 범천이 태어났다.' 지주가 범천을 낳은 것이니 저절로 생겼다는 말 맞지 않다. '지주(地主)는 찰리 종족과 범지 종족의 부모이다.' 그러면 왜 찰리의 자손들과 범지들은 다시 서로를 낳는가? 그들이 태어난 곳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저 여러 하늘들이 한 말 그것은 바로 찬탄한 말이거늘 도리어 굴레의 재앙을 스스로 덮어쓰네. '저 범천이 사람을 낳았고 지주는 세상을 만들었다.' 혹은 '다른 이가 만들었다' 말하지만 이 말을 누가 증명할건가? 성냄과 탐욕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가 함께 어울려 그 마음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세상에서 내가 훌륭하다'고 스스로 일컫는구나. 천신(天神)이 세상을 만든 것도 저 범천이 낳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범천이 만들었다 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말이 아닌가? 그 자취 찾아보면 갈래가 많고 진실을 살펴보면 그 말들 허망하다 그런 행들 제각기 서로 서로 다른데 그런 행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니라.(후략)
- 출처 : 동국대학교 한글대장경 증일아함경 제 43권 47. 선악품

일본의 불교학자 미야사카 유소(宮坂宥勝)는 범천권청에는 크게 3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해석한다.

우선 브라만교 최고의 신이 석가모니 부처에게 설법을 간청한 것은 브라만교의 가치 체계가 변경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범천의 간청에 석가모니 부처가 “감로의 문이 열렸다. 귀 있는 자들은 와서 들어라”고 힘차게 외쳤는데, 이는 만인을 향해 석가모니 부처가 공개적으로 가르침을 펴겠다는 의지의 표현 즉 공개성이다.[8] 이러한 공개성은 불교가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세계 종교로 성장하는 힘이 된다. 또한 "설법을 하지 않고 나 혼자 조용히 열반에 들겠다"는 석가모니 부처의 모습이 '신비와 직관을 체험하는 세계'라면,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 가르침을 펴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러한 체험의 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공개의 세계라는 것이다. 때문에 불교는 밀교(설법 이전)와 현교(설법 결심 이후)로 표현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유소는 분석한다.



[1] 본명 싸함빠띠 [2] 이런 식으로 신흥 종교가 기성 종교의 교리를 가져다 자신들의 위상을 세우려고 한 사례는 그리스도교나 이슬람도 마찬가지라서, 기존 로마 다신교의 예언서인 시빌라 예언서가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예언하고 있었다거나, 예수의 탄생을 알고 베들레헴까지 찾아왔다는 동방박사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이었으며, 예수가 등장하기 전 유대교의 경전과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예언자들의 언행을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예언하는 내용이었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슬람도 비슷하다. [3] 부처가 9번째 아바타라라는 건 세상이 점점 말세로 가고 있다는 뜻으로, 10번째 아바타라 칼키의 등장을 예고한다. 9번째 아바타라 부처는 마족들에게 이단의 교리를 설파해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으로도 칼리 유가는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열 번째 아바타라가 나타나게 된다. [4] 이번 우주 [5] 우주의 수명을 1 겁 이라고 말한다 [6] 불설범망육십이견경(佛說梵網六十二見經)이라는 다른 번역본이 있다. [7] 한자로는 梵志. 바라문, 혹은 바라문교의 사제들이 행하는 4기의 생활 중 제 1단계인 스승 밑에서 배우는 시기를 말한다. [8] 석가모니 부처는 만년에도 아난의 앞에서 “스승에게는 사사로이 쥐는 주먹이 없다”고 말했는데, 혼자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비밀스런 가르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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