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항일 빨치산 1세대 출신의 북한의 군인, 정치가.2. 생애
1917년 3월 14일에 태어났다.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민생단 사건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1937년에 항일 빨치산에 입대, 1940년부터 소련군 소대장으로 정찰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빨치산 동료 리정인과 결혼하였다. 해방 이후 1945년 8월, 철도경비대 대대장에 임명되었으며 6.25 전쟁 발발 이후 포병사령부 여단장에 임명되어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에서 싸웠다. 이후 3사단 포병 부사단장을 거쳐 1952년 8월, 3사단장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 1959년, 조선인민군 46사단장 등을 역임했다. 1960년에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재선되었다. 1963년 6월, 포병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66년 제2집단군 사령관에 이르렀으나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하고 잠적했다.
그러다가 1976년 3월 22일에 사망했다. 부고 발표 등이 없던 것을 보아서는 1969년 1월, 허봉학, 김창봉 사건 등에 휘말려서 숙청되었던 것일 수도 있는데 이후 복권이 이루어졌는지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항일혁명렬사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아내 리정인은 무려 100살을 넘게 살다가 2015년에 사망했다. 이후 대접이 나쁘지 않아서 북한에서 과거의 충신 중 한명으로 그를 언급하기도 했다.
3.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