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8 22:51:14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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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水東

1. 소개2. 개인 일화3. 작품 목록

1. 소개

대한민국의 명랑/ 성인 만화가며 주로 박수동 화백으로 불린다.

1941년 11월 12일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광복 당시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다. 부산 사범학교를 졸업, 1961년부터 교직 5년간 밀양/단산/초동/서울 성북 공민학교 교사를 지냈다. 데뷔 후에도 대한교련 <새교실> 편집기자를 6~7년 지낸 적도 있다. 이 당시엔 <탁배기 교장>을 연재했다.

원래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만화가 데뷔(등단 1965년, 전업 1974년[1])은 상당히 늦은 편이다. 그래서 문하생 시절도 없었고, 밑에 설명할 특이한 성냥 그림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애초 교사 시절의 동심을 그린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만화를 시작했고, 초기 요청이 들어온 시사만화도 3개월만에 그만두었다는 후문. 한창 폭력과 억압이 난무하던 시대에 교편을 잡았지만, 당시로서는 아이들을 덜 강압적이고 인간적으로 지도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2]이 시기의 대표작 <5학년 5반 삼총사>(77년작)를 보면 당시로는 열린 사고방식으로 가급적 체벌과 욕설을 자제하고 말썽꾸러기 주인공 3총사와 서스럼없이 어울리는 교장선생님이 등장하며, 주인공들의 담임 하동포 선생도 당시 교사 기준으로는 아이들과 서로 어울려 울고 웃는, 천사와 다름없는 무난한 성격으로 나온다.

70년대 중반까지는 < 신판 오성과 한음> 등의 명랑만화를 그렸으나 이후 성인 대상의 性적인 유머를 주 소재로 한 < 고인돌>로 성인 만화가로 자리잡았다. 회사 사보나 여성잡지등에도 꾸준히 연재되었는데, 말초 신경을 자극하기보다는 일종의 해학적 음담패설(…)을 그려내는 작가.

평이하지만 기복이 없는 내용 전개로 단편물들은 잡지 폐간 때까지 그리는 장기 연재가 많다. 고인돌 시리즈는 박정희 때부터 노태우 때까지 연재된 작품, 주부생활의 소꿉장 부부는 이전 연재분인 신혼 행진곡, 와이프 행진곡과 합치면 어마어마한 장기 연재물, 실지로 고인돌의 내용 중에도 석기 시대 1970년이라는 내용이 나오고, 후기에는 노태우 시대의 5공 청산 패러디가 나올 정도였다.

특유의 특이한 그림체 및 선은 사실 성냥개비를 먹물에 찍어서 쓰는 것이라고 한다.[3] 우습게도 이 그림체가 아이들 정서에 나쁘다는 별 황당한 이유( 윤승운과 같이)로 불량만화로 뽑힌 실화가 있다. 그 장본인은 역시나...

스크류바 빠삐코의 선전에서 <고인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한 셈이라 화백의 명랑만화가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할 법도 했으나 결국 2000년에 <고인돌>이 OVA로 한 차례 제작되었을 뿐 극장판이나 TVA로 제작, 방영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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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SBS의 마스코트인 '고미'를 디자인했다. 2012년까지 프로그램 엔딩 등에 등장했으며 지금은 마스코트 디자인이 리뉴얼되어 박수동 화백 특유의 그림체는 사라졌다. SBS 항목 참조.

60대 이상이신 몸으로 던전 앤 파이터의 광고 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

빠삐놈을 통해 그림이 합성 소스로 간간히 쓰였다.

2001년부터 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 교수를 지내다가 2008년 은퇴,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전원생활을 보내고 있으며, 2021년 오랫만에 근황 인터뷰가 올라왔다. # 기사에 따르면 그림은 취미 정도로 그리고, 빠삐코 스크류바 광고 이미지 계약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2. 개인 일화

젊은 시절부터 몸짱[4]으로 만화계에서 유명했으며, 다재다능한 취미로 유명했다고 한다. 후배 이상무가 그린 골프만화에 의하면 바둑은 젊을적부터 아마추어 고단수로 만화계에서 바둑 최강자였으며 테니스 야구, 권투,달리기, 역도, 태권도 등등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재능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나, 골프만은 좀 치다가 짜증내면서 다시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이상무가 회고했다. 사실 이상무 말고도 다른 스포츠에서 워낙에 재능이 좋다보니 만화계 선후배들이 박수동이 골프도 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이걸 보고 다들 피식 웃어버렸는데 박수동은 버럭거리면서 '그럼 늬들 어디 바둑이나 다른 걸로 맞서볼래? 모든 걸 다 잘하는게 어디있어!' 라고 따졌다고 한다.

오래 전 조선일보에서 취재한 화백 전시회 사진을 젊을때 사진으로 대체한 적이 있는데, 나이들고 병든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건강하시다. 등산을 좋아하여 서울 생활 중에는 북한산 근처에 집을 구해 매일 같이 등산을 했고, 현재 거주하는 음성군에서도 매일 같이 뒷산에 오른다고 한다.

고인돌이 처음으로 애니화된 거 같으나, 박수동이 인물 디자인을 그려서 단편 애니로 만든 적이 훨씬 이전에 있었다. 80년대 후반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한 3분 정도 시간으로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미스터 일요일"이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박수동 그림체로 중년가장인 주인공 미스터 일요일의 회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성우가 바로 김병조, 아내는 배연정이었고 극중 다른 인물들도 지금은 고인이 된 남성남이라든지 여러 개그맨들이 성우로 참여했었다.

3. 작품 목록

  • 땅콩찐콩( 만화일기)
  • 신판 오성과 한음
  • 번데기 야구단
  • 5학년 5반 삼총사[5]
  • 딸기코 감독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발행된 야구 전문잡지 <주간야구>에서 7컷, 1페이지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 고인돌
    • 소년 고인돌최초의 인간 개톨즈 (はじめ人間ギャートルズ) - 1974.10.5라는 비슷한 컨셉의 만화가 일본에서 나왔고 캐릭터도 겹치는 편이다.

    주인공 소년 고인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 홍길동과 헤딩박
  • 만방아저씨
    국내 유일의 바둑잡지인 '월간 바둑'에서 연재했으며 한 페이지 만화다.
  • 별똥 탐험대 1~4권
    고인돌처럼 원시인들이 나오는 만화지만 우주탐험을 다룬 SF만화. 별나라로 간 어머니를 보고 싶은 주인공이 동료(여자, 고릴라)들과 함께 조각배를 타고 우주로 나가면서 모험이 시작되는데 은하수에서 목을 축이는 등 과학과 환상이 융합된 작품이다.지구가 정육면체라는 생각으로 배를타고 떨어져서우주로 가지만 정작멀리서보니 지구가 둥글게보인다. 은하수를 돌면서 큰곰 자리 작은곰 자리 페르세우스 케페우스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아를 만나고 그들이 사는 별에 들어가서 음식을 몰래 훔쳐 먹거나 하는 이야기로 전개 된다. 별자리관련으로 순화와 번안이된부분들이 있다.칼리스토가 미모때문에 헤라에게 당한다거나 리라가 형태는 그대론데 거문고라고 불린다거나 하는 것.
    그런데 이 작가의 시대극이 그렇듯 원시인들끼리 무전기[6]로 전파를 주고받거나 돌로 깎은 천체 망원경을 돌로 깎은 텔레비전에 연결하여 주인공과 선녀가 된 엄마의 재회 장면을 시청 하기도 하는 등 시대를 초월한 장면이 나온다.
    원작은 1975~1979년 발행된 아동잡지 '소년생활' 부록만화로, 1975년12월호 (창간호) 부터 1976년 3월호까지 4회 연재되었다.
  • 5학년 5반 삼총사
  • 솔봉이의 세계여행
    70년대에 일반인들의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시기여서 책이나 TV 등을 통해서만 해외 지식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 만화는 솔봉이라는 캐릭터의 해외여행을 통해 외국의 여러 유명 장소나 풍습 등을 그림으로나마 접할 수 있도록 소개되었다. 아쉽게도 단권짜리였지만...
  • 신혼 행진곡 → 와이프 행진곡 → 소꿉장 부부
    같은 시리즈들이며, 이야기 진행에 따라 제목이 바뀌었다.
  • 박수동 주파수 : '월간 바둑에서 목차 다음으로 본문에 들어가기 전 바둑계의 제일 큰 소식을 그렸던 1쪽 1컷 만화.
  • 공룡나라 우리엄마
    고인돌 시리즈와 같은 세계관으로 말썽쟁이 주인공 소년 고인돌과 그의 어머니가 펼치는 일상 이야기.


[1] <새교실 >편집장인 하근찬 선생의 추천으로 썬데이 서울에 <고인돌> 연재를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한다. 그래서 데뷔 연도에 대해 들쭉 날쭉한데, 일단 첫 등단은 65년이 맞고, 60년대 내내 작품 활동을 했다. [2] 1년간 재직한 학교를 전근할 때 학교 입구부터 신작로까지 아이들이 줄줄이 서서 인사했고,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이따금 농산물을 보내주는 제자도 있다고 한다. [3] 이는 만화 교본 같은 곳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사실이다. 어느 교본에서는 누구라고 말은 안하지만 성냥개비로 원시인을 그리는 장면을 재현했다. [4] "키 183cm, 체중 75kg의 거구였다. 기골이 장대한 그는 주로 헐렁한 쉐터에 색 바랜 청바지를 입고 꾸부정하게 걸어다녔다."고 회자된다. [5] 70년대의 학생 생활을 그대로 알 수 있는 수작이다. # [6] 물론 돌로 깎아 만든 무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