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3 13:53:47

박수남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
박수남
Park Soo Nam
파일:태권도 박수남.jpg
출생 1947년
경상남도 남해군
사망 2024년 6월 15일 (향년 77세)
독일 슈투트가르트
학력 경남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학사)
약력 유럽태권도연맹 부회장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 총재
세계태권도연맹 집행위원
WTF 부총재
가족 배우자, 슬하 3녀

1. 개요2. 생애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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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체육인.

2. 생애

1947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 태권도 수련 매진했고, 각종 전국 대회에서 수상하며 주목 받았다. 대학 졸업 이후 도장을 차려 사범으로 태권도에 첫 발을 들였다. 그렇게 국내 최초로 서울에서 외국인 대상 태권도장을 운영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 온 스카웃 제의로 1974년 독일(슈투트가르트)로 넘어가 태권도장을 개원하면서 태권도 세계화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도 실력을 인정 받는으며 이듬해인 1975년 이방인으로는 최초로 독일 태권도 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는 안정적인 팀 운영으로 10년 이상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유럽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그 업적 덕분에 오스트리아와 영국, 벨기에 유고슬로비아 등 일본의 가라테가 강세였던 유럽 무도 시장에 태권도 종목을 정착시키는데 '1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실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IOC가 일본의 가라테의 종목 진입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독일과 영국 등 IOC 위원들을 설득해 태권도의 정식종목 채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영향력의 확대 결과 1988년 독일 정부로부터 훈장(독일 정부 철십자상)을 수여 받는 영애를 안았다. 그는 애국가 작곡가로 알려진 윤이상(독일 국적)에 이어 두 번째이자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첫 번째 수상자였다. 그는 2000년도에 들어서도 어린이 태권도의 글로벌 네트워킹 구축에 힘써왔다.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CTU) 총재로 활동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경락품세'와 '유소년 태권 정신 및 문화 보급' 등에 물신양면 애써왔다. 그러던 도중 갑작스런 지병 발견으로 치료에 집중했다. 하지만 병세는 악화됐고 2024년 4월 23일 수술대에 올랐다.

3. 사망

2024년 6월 15일 사망했다. 향년 7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