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상종(朴商鍾) |
생몰 | 1881년 3월 7일 ~ 1946년 8월 25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청양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상종은 1881년 3월 7일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초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홍범섭· 홍세표·윤석희(尹錫禧) 등과 논의한 끝에 정산 장날인 4월 5일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시위를 준비했다. 이윽고 4월 5일 오후 3시, 그는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백여 명의 장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시작했다. 일본 헌병은 만세군중 30여 명을 연행하면서 만세시위를 진압하고자 했으나, 이에 격노한 시민들 7백여 명이 만세시위를 거행하면서 연행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이때 정산 향교직원인 권흥규가 총탄을 맞아 피살되었다. 이에 4월 6일, 천여 명의 군중은 권흥규의 상여를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그는 박상종은 이들을 인솔하면서 태극기를 만들고 장례 명정에 〈배일사 권흥규지구(排日士權興圭之柩)〉라고 크게 써서 시위대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이에 일본군은 운구 행렬에 무차별 발포를 가해 6명을 죽이고 166명을 체포해 태형에 처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청양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6년 8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상종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