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53:54

박병수(1900)

파일:박병수.jpg
성명 박병수(朴秉壽)
생몰 1900년 5월 21일 ~ 1962년 11월 8일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부 외서면 원정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사망지 경상남도 마산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박병수는 1900년 5월 21일 경상남도 창원부 외서면 원정(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경상남도 동래에서 3.1 운동에 참가했고 대한제국 황실의 회복을 촉구하며 천황을 통박하는 투서를 배포하다 경찰에 체포되었고, 1920년 4월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보다 구체적으로 독립운동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1920년 12월 마산에서 전재완·이정문(李廷文)·김응윤(金應允) 등과 함께 비밀결사 용진단(勇進團)을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용진단의 조직 체계가 단장(전재완)·총무(이정문)·서기(김응윤)·회계(박병수) 등으로 구성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군자금 수합 및 선전활동을 통해 해외독립운동 기관을 지원하려던 단체로 파악된다.

이후 1921년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이 만주(滿洲) 청산리(靑山里)에서 일본군을 궤멸시켰다는 내용의 전단을 경남 창원군 구산면사무소에 배포했다가 체포되어 1922년 3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양산 지방에서 텃밭 농부로 생계를 이어가다 8.15 광복을 맞이했고, 이후 1948년 1월 25일에서 1948년 8월 26일까지 한국독립당 대표전임위원을 지냈다. 이후 1953년 경상남도 도지사 직무대행 서리를 잠시 지냈다. 1962년 11월 8일 마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병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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